달러 강세 속에 엔화 가치가 원화보다 더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어 한국 산업·무역에 미칠 영향에 이목이 집중된다.
특히 철강업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중국산 저가 철강 제품의 국내 유입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역대급 엔저'로 일본 철강 제품이 경쟁력을 키우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1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29일을 기준으로 원/달러 환율은 올해 들어 5.9%, 엔/달러 환율은 12.4% 각각 올랐다. 달러 대비 엔화의 가치 하락 폭이 원화보다 더 컸다는 뜻이다.
지난달 29일 아시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1990년 4월 이후 34년 만에 처음으로 달러당 160엔선을 넘기도 했다. 같은 날 원/엔 재정환율은 한때 860원대까지 내려갔다.
전통적으로 엔저 심화는 통상 한국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소로 여겨진다.
철강, 자동차, 석유화학 업종 등의 기업에 영향이 큰 편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 철강업계는 중국산 저가 철강 제품은 물론 엔저를 등에 업은 일본 철강 제품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작년 중국산과 일본산 철강재 수입은 각각 873만t, 561만t으로 전년보다 29.2%, 3.1% 늘어났다.
작년 한국의 전체 수입 철강재 중 중국과 일본에서 수입된 철강이 차지하는 비율은 92%에 달했다. 엔저 심화는 일본 철강 수입이 확대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업계에 따르면 중국산 제품의 대거 유입으로 국내산 열연강판(SS275 기준) 가격은 최근 1t당 70만원대까지 내려갔다. 수입산 열연강판은 국내산과 비교해 5∼10% 낮은 가격으로 국내 시장에서 팔리고 있다.
가격 경쟁 격화는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국내 주요 철강사들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포스코홀딩스 철강 부문 영업이익은 작년 2분기 1조원을 넘겼지만, 이후 지속 하락해 올해 1분기에는 3천억원대까지 밀렸다.
철강 업계 관계자는 "일본산 철강 수입재의 비중이 이미 상당히 늘어나 국내 철강 수요를 잠식하고 있다"며 "철강 시황이 안 그래도 좋지 않은데 엔저 심화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 한국과 일본의 주요 기업이 자국 통화 약세를 미국 등 해외 시장에서 '가격 인하'보다는 '이익 확대'의 기회로 활용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는 점에서 최근의 엔저 심화가 한국의 자동차, 반도체 기업들의 전반적 수출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은 작다는 관측이 나온다.
또 과거 한국과 일본은 주력 산업인 자동차와 전기·전자, 철강, 선박 등 여러 분야에서 수출 경합도가 높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자동차, 반도체 등을 제외한 여러 분야에서 수출 경합도가 낮아지는 추세이기도 하다.
작년부터 장기화한 엔저 현상에도 전기차 수출 호조가 보여주듯 한국의 주요 수출품이 해외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차별화된 품질과 기술 경쟁력을 앞세우고 있다는 것도 과거와는 크게 달라진 점으로 꼽힌다.
일례로 과거 조선 산업은 한일 기업의 수출 경합도가 높은 분야였지만, 최근 K-조선사들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에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고부가 선박 수주를 독식하고 있다.
장상식 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최근 들어 엔화의 하락세가 원화보다 더욱 가팔라지는 추세"라며 "엔저 심화가 한국의 무역 전반에 영향을 주기보다는 이미 공급 과잉이 문제가 되는 철강, 화학 등 분야 기업에 부담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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