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 애플 지분 13% 팔았다…팀쿡 등장에 술렁 [오마하 현장 리포트]

김종학 기자

입력 2024-05-05 02:06   수정 2024-05-06 04:38

4일 벅셔해서웨이 2024 연례 주주총회
현금성 자산 247조 원 돌파 "쓸 곳 없다"
애플 지분 13% 축소..파라마운트 전량 처분
워런 버핏 후계 확정 "그렉 에이블에 맡길 것"
(현지시간 4일 벅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장에서 주주들과 촬영 중인 팀쿡 애플 최고경영자, 사진=김종학)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이 이끌고 있는 벅셔 해서웨이가 지난해 1분기 주요 투자 기업인 애플 지분을 대폭 축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지시간 4일 미국 네브레스카주 오마하에 위치한 CHI 헬스센터에 열린 주주총회에서 이러한 실적을 발표한 워런 버핏은 기업에 대한 전망이 바뀐 것이 아닌 세금 문제를 우려한 매도라고 해명했다.

벅셔 해서웨이가 이날 오전 공개한 2024 회계연도 1분기 실적에 따르면 총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 증가한 898억 6,9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부문별 영업이익은 주력인 보험 부문은 인수와 투자를 더해 총 51억 9,600만 달러로 지난해(약 29억 달러) 대비 79.9% 늘었다. 이 가운데 보험 인수 수익만 25억 9,800만 달러로 1년 만에 185% 증가해 전체 실적을 뒷받침했다. 미국 내 점유율 2위 이자 벅셔의 주요 자회사인 자동차보험사인 가이코(GEICO)는 지난해 19억 2,8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174% 실적 증가를 보였다.

나머지 사업 부문 가운데 벅셔해서웨이 에너지는 7억 1700만 달러로 72.4% 증가했고, 제조업 부문은 30억 2,100만 달러로 1.3% 이익이 늘었다. 이에 반해 지난해말 인건비와 운용 부담을 언급한 철도 회사 벌링턴 노던 산타페(BNSF)는 전년 대비 8.3% 감소한 11억 4,3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보험 부문의 탄탄한 실적과 달리 투자 부문의 실적 둔화로 인해 벅셔 해서웨이의 1분기 순이익은 64% 감소한 127억 달러에 그쳤다.

현금성 자산은 지난해 말 1,632억 9,100만 달러(우리 돈 약 222조 원)에서 1분기말 1,823억 3,500만 달러(약 247조 8천억 원)로 급증했다. 워런 버핏 회장은 1분기 실적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이번 분기 말에는 약 2천억 달러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버핏 회장은 "돈을 쓰고 싶지만, 위험이 거의 없고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여기지 않는 한 쓰지 않겠다"고 밝혔다.

(현지시간 4일, 워런 버핏이 인수해 2년째 주주총회에 참여한 봉제인형 업체 재즈웨어 부스)


● 애플 지분 2분기 연속 축소…버핏 "계속 보유할 계획"

CHI헬스센터에 약 4만 명을 가득 채워 성황을 이룬 이날 벅셔해서웨이 주총장은 지난해와 다른 풍경이 여럿 연출됐다. 새벽 4시부터 CHI헬스센터 정문이 열리길 기다리며 줄을 서 입장을 기다리던 주주들 한켠에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대가 등장해 혼란을 빚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에 대한 미국 내 대학생들의 반발이 확산하는 가운데 이날 시위대는 가자 지구의 휴전 요구와 함께 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가 연관된 기업에 대한 투자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수선한 주총장 밖과 달리 주주총회 내부는 예년과 같은 들뜬 주주들이 자녀를 동반하거나 부부 혹은 연인, 직장 동료 등이 삼삼오오 모여 행사장을 가득 메웠다. 주주총회장 연단 앞에 마련된 특별 좌석에는 주요 투자기업인 애플의 팀 쿡 최고경영자가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팀 쿡은 이날 최고재무책임자인 루카 마에스트리,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담당 부사장인 크리스틴 휴겟 퀘일 등과 함게 주주총회에 참석했다.

그러나 그의 방문에도 벅셔 해서웨이는 지난해 1분기 기준 애플 지분을 13%나 줄인 실적 보고서로 투자자들을 놀라게했다. 2024년 1분기 기준 벅셔해서웨이가 보유한 투자 기업 지분가치는 애플 1,354억 달러, 뱅크오브아메리카 392억 달러, 아메리칸 익스프레스가 345억 달러, 코카콜라 245억 달러, 쉐브론 194억 달러 순이다.

벅셔 해서웨이는 지난해 4분기 9억 556만 주, 1,743억 달러 어치의 애플 지분을 보유했으나 지난 3월말 기준 7억 9천만 주로 13%(1억 1,556만주)를 더 줄였다. 벅셔 해서웨이의 애플 보유 지분가치는 지난 1분기 주가 변동의 여파로 지난 4분기 대비 23% 감소했다. 이에 대해 워런 버핏은 기업에 대한 전망이 바뀐 것이 아닌 세금 부담을 우려한 지분 축소라고 해명했다. 버핏은 미국 정부의 천문학적인 재정적자로 인한 세율 인상 가능성을 언급하며 "올해 21% 세율을 떼고 조금 더 올린다면 올해 애플을 판 것에 대해 조금도 불편하게 여길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버핏은 애플의 매출 둔화에도 최대주주로 남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거듭 강조했다.버핏은 애플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코카콜라보다 훨씬 나은 기업"이라면서 그의 후계자인 그렉 에이블 비보험부문 부회장이 기업을 넘겨받더라도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코카콜라, 애플을 계속 보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버크셔해서웨이는 워런 버핏이 투자 포트폴리오를 총괄하고 있는 토드 콤스 가이코 최고경영자와 테드 웨슬러 포트폴리오 매니저의 영향으로 2016년부터 애플 지분을 매입해 왔으며 지난해 말 기준 전체 포트폴리오의 50%를 투자한 애플 최대주주다. 파이낸셜타임스가 모닝스타 자료를 인용한 분석에 따르면 버크셔해서웨이가 애플 투자로 거둔 수익은 누적 600%를 상회하고 있다.

애플 주가는 지난해 1년간 48% 상승했으나, 올해들어 중국 내 아이폰 판매 부진으로 지난 금요일까지 1.23% 하락한 상태다. 애플은 지난 2일 장 마감 후 실적에서 매출은 시장 예상보다 높은 608억 달러를 기록했고, 1,100억 달러에 이르는 자사주 매입 발표에 하루 만에 5.9% 가량 급등했다. 버핏은 지난 지난해 4분기에도 전체 포트폴리오의 1% 가량인 1천만 주의 애플 지분 매도에 대해 "실수 였을 것"이라며 의미를 축소해왔다.

벅셔 해서웨이는 지난 분기 애플 뿐만 아니라 막대한 부채와 경영난으로 매각을 진행하고 있는 파라마운트 지분도 전량 매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벅셔는 2023년말까지 파라마운트 주식 6,330만 주를 보유했다. 버핏은 이날 주주총회에서 이러한 사실을 밝한 뒤 "완전히 저의 결정이었고, 꽤 손해를 봤다"면서 "사람들이 여가 시간에 우선 순위를 두는 활동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 "멍거가 정말 그리워요"…주주들 웃고 울린 추모 영상

"사람들이 자주 틀리지 않았다면, 우린 그렇게 부자가 되지 못했을 겁니다"

벅셔 해서웨이 주주총회는 지난해 11월 28일 향년 9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찰리 멍거 부회장을 추모하는 영상과 발언으로 많은 주주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주총의 백미인 Q&A에 앞서 상영한 영상에는 인기 미국 드라마인 '더 오피스', '위기의 주부들', '브레이킹 배드' 등을 패러디한 장면에 찰리 멍거와 워런 버핏이 등장해 2천년대 이후 남긴 명언들을 재연했다.

추모 영상이 끝난 뒤 워런 버핏이 주주총회장의 불을 밝힐 것을 요청하자 주주들은 기립 박수로 찰리 멍거를 다시 한 번 추모했다. 워럿 버핏은 "어떤 주식을 사야할지 아내와 자녀들에게 물어보지는 않는다"면서 "돈 관리에 있어서 찰리 만한 사람은 수 십년간 없었다"고 회상했다.

벅셔 해서웨이가 거르린 자회사들도 찰리 멍거를 회고하는 상품을 선보였다. 찰리 멍거를 통해 발굴한 대표적 가치주인 씨즈캔디는 그를 기리는 선물 패키지를 내놨고, 인형 제조회사인 재즈웨어는 버핏과 멍거를 닮은 말랑말랑한 봉제 인형을 선보였다. 캘리포니아에서 친구들과 함께 주주총회장을 찾은 로라 그레이(69)씨는 "찰리 멍거가 그립다며 두 사람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보유하고 있던 BNSF를 버크셔해서웨이가 사들이면서 주주가된 그레이씨는 "워런과 찰리가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워런은 코카콜라를 마시고, 찰리는 시즈캔디를 먹으며 답변하던 모습들을 다시 보고 싶다"고 말했다.

네브레스카주 오마하에서 나고 자란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는 각각 29세와 35세이던 시기 버핏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잡화점에서 만났다. 변호사로 다른 사업을 하던 찰리 멍거는 1962년 워런 버핏이 인수한 버크셔 해서웨이에 공동 경영자로 참여하면서 이후 60년 가까운 인연을 이어왔다. 1930년생으로 올해 94세를 앞둔 워런 버핏도 고령을 의식해 약 10년 간에 걸쳐 후계 구도를 만드는데 공을 들여왔다.

● 벅셔 해서웨이, 버핏 후계 확정…'그렉 아벨' 홀로 이끈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 좀처럼 언급하지 않던 워런 버핏은 지난해 11월 아들이 하워드 워런 등의 이름으로 된 4개의 재단에 기부를 하면서 "93세의 나이가 저는 좋지만, 연장전을 치르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면서 "2006년에는 이 엄청난 책임에 준비되어 있지 않았지만 지금은 되어 있다"고 변화를 시사해왔다.

현재 벅셔해서웨이는 워런 버핏 회장 아래 가이코, 내셔널 인뎀니티 등 보험 부문은 아짓 자인 부회장, 벅셔 해서웨이 에너지와 철도회사 벌링턴노던산타페(BNSF) 등 비보험 부문은 그렉 에이블 부회장, 그외 투자 부문은 토드 콤스 가이코 최고경영자와 테드 웨슬러 포트폴리오 매니저가 맡고 있다.

이런 후계 구도에 대해 워런 버핏은 오후 주주총회에서 그의 후계자는 그렉 에이블 비보험부문 부회장이 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버핏은 "자본 배분은 그렉에게 맡길 것이며, 그가 사업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다"며 결정 배경을 밝혔다.

버핏은 "예전에는 다르게 생각했지만, 책임은 최고경영자가 져야 하고 그러한 결정이 도움이 될 수 있다"면서 "벅셔해서웨이의 자산이 너무 커져 두 사람이 나눠 관리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버핏은 "최고결정권자는 아무도 움직이지 않을 때 사업을 인수하고 주식을 모으는 등 모든 종류의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버핏의 발언에 따라 투자 포트폴리오 매니저 역할을 맡아온 토드 콤스와 테드 웨슬러가 아닌 그렉 에이블이 투자 부문까지 최종 결정권을 갖게 될 전망이다.

단짝인 찰리 멍거 없이 사실상 홀로 6시간에 걸친 모든 대화 시간을 이어간 워런 버핏 회장은 "내년에도 꼭 오셨으면 좋겠고, 저도 내년에 참석하면 좋겠습니다"라는 말로 주주총회를 매듭지었다. 10년 넘게 벅셔 해서웨이에 투자하며 두 번째 주주총회에 참석한 지나 헤이건(67)씨는 "버핏은 일상을 낫게 할 훌륭한 조언들을 하고, 미국에 투자하면서 자본주의를 대변해왔다"며 "찰리 멍거는 떠났지만 그가 함께 설계한 벅셔 해서웨이가 더 나은 성과를 이어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오마하 = 김종학 뉴욕 특파원


(현지시간 4일, 찰리 멍거 추모 영상이 끝난 뒤 연단을 향해 기립박수를 치고 있는 주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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