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차명 휴대전화와 은신처를 부탁한 마약 사범을 범인도피교사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와 이목이 쏠린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향정), 범인도피교사 혐의로 기소된 최모 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지난달 25일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최씨는 2021년 10월 검찰 수사관들이 마약류 밀수입 범죄로 자신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하자 10년 넘게 알던 지인 이모 씨에게 부탁해 은신처와 차명 휴대전화를 제공하도록 한 혐의를 받는다.
기본적으로 범죄 혐의를 받는 피의자는 '스스로 죄를 인정할 필요가 없다'는 자기부죄의 원칙에 따라 거짓말을 하거나 도망가더라도 처벌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씨처럼 타인을 동원해서 도피하는 등 스스로 도피하는 수준을 넘어 방어권을 남용하면, 타인에게 범인도피를 교사한 죄로 처벌할 수 있다.
이때 법정에서는 피고인이 도망가기 위해 타인을 동원한 행위가 방어권 남용으로 볼만큼 지나친 수준인지가 주요한 쟁점이 된다.
1심과 2심은 최씨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8년을 선고했다. 다른 이들과 공모해 메트암페타민 1천500g을 수입한 혐의도 반영된 형량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최씨를 마약 혐의로는 처벌할 수 있지만 범인도피교사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최씨의 행위가 "형사사법에 중대한 장애를 초래한다고 보기 어려운 통상적인 도피의 한 유형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며 "형사피의자로서의 방어권 남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대법원은 "이씨는 피고인과 10년 이상의 친분관계 때문에 피고인의 부탁에 응해 도와준 것으로 보이고, 도피를 위한 인적·물적 시설을 미리 구비하거나 조직적인 범죄단체 등을 구성해 역할을 분담한 것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최씨를 자기 집에 숨겨주고 수사관들에게 '나는 번호도 모른다'고 거짓말을 한 이씨는 별도로 기소돼 실형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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