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임기를 놓고 헌법 논쟁을 벌이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임기는 애초 이달 20일 끝났어야 했지만 러시아 침공으로 발령한 계엄령으로 대선을 치르지 못하는 바람에 대통령직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이를 두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오후 우즈베키스탄 방문 중 기자회견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의 임기가 종료됐으며 권력이 우크라이나 의회(베르코우나 라다) 의장에게 이양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은 "엄밀히 말하면 우크라이나에서 유일하게 합법적인 권력은 의회와 의회 의장뿐"이라며 계엄령 중 선거를 치르지 않았다고 해서 대통령 임기가 연장되는 건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헌법 111조를 보면 (대선이 실시되지 않을 경우) 권한은 의회 의장에게 넘어간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현행 헌법 83조를 보면 계엄령 도중 의회 의원의 임기가 끝날 경우 해제될 때까지 그 권한이 연장된다고 명시했지만 대통령 임기 연장과 관련한 조문은 없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언급한 우크라이나 헌법 111조는 대통령이 반역 등 범죄를 저질러 탄핵·해임됐을 때를 상정한 규정이다. 112조는 탄핵 등 이유로 대통령 임기가 '조기 종료'되면 선거를 치르기 전까지는 의회 의장이 권한이 이양된다고 규정한다.
러시아의 이런 주장은 우크라이나를 불법 통치하는 정권과 전쟁한다는 명분의 우위를 차지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아울러 젤렌스키 정부의 법적 정통성을 공격함으로써 이를 돕는 서방 역시 불법 정권에 영합한 세력으로 전쟁의 구도를 규정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같은 '입법 미비' 상태와 관련해 계엄령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대통령 임기가 자동 연장된다는 유권해석을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헌법 108조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새로 선출된 대통령이 취임할 때까지 권한을 행사한다며 권한이 조기 종료되는 유고 사유를 사임, 건강상 이유, 탄핵, 사망 등 4가지로 한정하고 있다.
계엄령으로 대선을 치르지 못해 차기 대통령이 선출되지 않을 경우 현 대통령의 임기가 연장되는지에 대한 명시적 조항은 없지만 넓게 해석하면 108조에 해당한다고도 할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권력을 이양받아야 할 대상으로 언급한 루슬란 스테판추크 라다 의장도 이날 직접 엑스(X·옛 트위터)에 글을 올려 러시아의 주장을 일축했다.
스테판추크 의장은 "젤렌스키는 계엄령이 끝날 때까지 우크라이나 대통령직을 유지할 것이다. 이는 우크라이나 헌법과 법률에 따른 것"이라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헌법을 읽기 시작한 것은 매우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다만 "조문을 발췌해 읽지 말고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새로 선출된 대통령이 취임할 때까지 자신의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는 108조 1항에 주의를 기울일 것을 권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러시아에 대해 "'국제 평화와 안보를 유지하고 강화한다'는 자국 헌법 79조 1항도 읽기 시작하면 좋을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이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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