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 중인 상대방에게 '직장을 떠나게 될 수 있다'는 문자를 보냈더라도 구체적인 해악이 명시되지 않았다면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지난달 17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보복협박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21년 10월 동료 교수 B씨에게 "이제 저도 인간관계를 정리하려고 한다. 정든 학교를 떠나게 되실 수도 있다. 제게 한 만큼 갚아 드리겠다. 연구실로 찾아뵙겠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내 신분에 불이익을 줄 것처럼 협박한 혐의로 기소됐다.
분쟁은 A씨가 B씨를 비롯한 동료 교수들에게 부동산 사업가를 소개해주면서 시작됐다. 사업가가 교수들로부터 2억4천705만원을 분양대금으로 받았으나 이후 실제 개발이 진행되지 않으면서 형사 사건으로 비화했다.
B씨 등은 사업가를 고소하면서 A씨도 엄벌해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했고, A씨는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지난 3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검찰은 A씨가 탄원서 제출에 앙심을 품고 보복할 목적으로 문자를 보냈다고 판단해 기소했다. 실제로 A씨가 B씨에게 문제의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이틀 뒤에 사업가는 대학에 B씨의 연구비 횡령 등 비리를 제보했다.
1심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으나 2심 법원은 보복 목적을 인정해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문자메시지 내용만으로는 피고인이 구체적으로 피해자(B씨)의 어떤 법익에 어떤 해악을 가하겠다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며 "내용의 추상성에 피고인이 피해자의 대학 내 지위 등에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면 피해자에게 불이익한 조치가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피고인의 뜻이 암시됐다고 쉽게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대법원은 또 "피고인이 문자메시지 발송 이후 피해자 관련 제보에 관여했음을 인정할 객관적 증거는 없다"며 "문자메시지는 피고인 주장처럼 취중 상태에서 상당 기간 친분을 맺어왔던 피해자에게 자신의 감정들을 일시적·충동적으로 토로한 것으로 이해될 여지가 많아 보인다"고 덧붙였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