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벨리온-사피온 합병…삼성·SK 미묘한 신경전 [IT인사이드]

박해린 기자

입력 2024-06-17 14:43   수정 2024-06-17 17:03

    <앵커>
    박해린 기자의 IT인사이드 시간입니다.

    박해린 산업부 기자 나왔습니다.

    박 기자, 최근 토종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 두 곳이 합병을 결정했습니다.

    특히나 이번 결정은 '적과의 동침'이라는 점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죠?

    <기자>
    그렇습니다.

    국내 AI 반도체 시장은 리벨리온과 사피온, 퓨리오사AI, 이렇게 세 기업이 주도하고 있는데요.

    이 중 리벨리온과 사피온이 전격 합병을 결정한 겁니다.

    경쟁사인 두 기업이 손 잡은 것만으로도 적과의 동침인데,

    사실 리벨리온은 KT가 투자해 2대 주주로 있는 기업이고, 사피온은 SKT의 계열사입니다.

    업계에선 영원한 경쟁사인 KT와 SKT가 한 데 뜻을 모았다는 점에서 이번 합병을 더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합병 법인에 대한 지분 비율은 사피온과 리벨리온이 각각 2대1로 논의되고 있으나

    아직 확정되지 않았고, 합병 법인의 경영은 리벨리온이 이끌기로 했습니다.

    두 회사는 기술과 인력, 자본 상태 등을 파악한 뒤 합병 법인을 어떤 형태로 구성할지 논의 중이고요.

    올해 3분기 중으로 합병을 위한 본계약 체결을 마무리할 계획입니다.

    통합 법인 출범 목표 시점은 연내로 잡고 있습니다.

    <앵커>
    왜 이런 파격적인 결정을 내린 겁니까?

    <기자>
    전통적 경쟁 관계인 두 기업이 이렇게 하나의 큰 뜻을 모으게 된 데에 대해 SKT와 KT는 "'대한민국 AI 반도체 대표 주자'를 만들기 위함"이라고 밝혔습니다.

    AI 관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만큼 적기에 글로벌 수준의 반도체 설계 전문(팹리스) 기업을 만들어 국가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단 취지죠.

    리벨리온과 사피온은 국내 대표적인 AI 반도체 팹리스 회사로 엔비디아처럼 AI 모델 구축에 사용되는 AI 가속기를 설계하는데,

    GPU(그래픽처리장치)가 아니라 NPU(신경망처리장치)로 가속기를 만듭니다.

    GPU보다 전력 소모가 적고, AI 추론에 강점을 갖고 있는 NPU 시장은 아직 절대 강자가 없고, 엔비디아의 아성을 깰 대체품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죠.

    이에 양사가 힘을 합쳐 글로벌 기업들과의 전쟁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자 이번 합병을 결정한 겁니다.

    <앵커>
    두 기업은 뜻을 같이 했을 수 있지만

    SKT와 KT는 불편했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합을 이룬 겁니까?

    <기자>
    취재해 보니, 사피온이 리벨리온보다 퓨리오사AI에 합병을 먼저 제안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퓨리오사AI가 난색을 표하자 리벨리온에게 손을 내민 거죠.

    사피온은 투자금을 거의 소진해 새로 투자를 유치하고 있었고, 대기업 계열사로 여러 의무와 절차가 따르는 상황이었습니다.

    반면 리벨리온은 최근 펀딩을 마쳐서 현금도 풍부하고 기술력도 인정받은 상태고, 스타트업으로 상대적으로 몸이 가볍다는 장점이 있었죠.

    사피온에겐 합병의 실익이 확실해 보이죠.

    그렇다면 리벨리온과 KT는 왜 합병을 결정했을까가 업계에서 의아하게 생각하는 부분인데요.

    앞서 말씀드린 경쟁력 확보에 더해 IPO(기업공개)가 주요한 원인으로 꼽힙니다.

    리벨리온은 현재 IPO를 준비하고 있고요. KT를 비롯해 주주들이 기대하는 기업가치는 최대 2조원 수준입니다.

    KT는 리벨리온의 주요 투자사이기 때문에 리벨리온이 사피온과 힘을 합쳐 시너지를 극대화하면 더 높은 기업가치로 기업공개(IPO)에 성공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판단한 겁니다.

    리벨리온도 성공적인 IPO로 기업가치를 높게 인정받아야 자금 조달도 원활할 거고요. 사피온코리아가 미국에 모회사를 두고 있어 네트워크 활용이 용이할 것이란 기대감도 추가로 더해진 것으로 풀이됩니다.

    <앵커>
    그럼 IPO는 언제 되는 겁니까?

    <기자>
    현재 주관사 선정 과정에 있었는데,

    이번 합병으로 당장의 일정은 소폭 미뤄진 상태입니다.

    합병 후 기업가치 등을 다시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죠.

    다만 이번 합병이 성공적인 IPO를 전제로 하고 있는 만큼 합병 후 IPO에는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더군다나 남은 한 기업인 퓨리오사AI는 리벨리온보다 앞서 IPO를 준비하며, 2026년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증권업계에선 토종 AI반도체 기업 첫 상장 타이틀을 거머쥐려 양사 모두 IPO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앵커>
    양사간 합병, 그냥 기다리면 되는 겁니까?

    <기자>
    관전 포인트가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미묘한 갈등인데요.

    리벨리온의 경우 삼성전자와 차세대 AI칩 '리벨'을 공동 개발하고 있습니다. 리벨은 삼성전자 파운드리 4나노 공정을 이용하며 삼성전자 HBM3E 메모리를 탑재할 예정입니다.

    반면 사피온은 SKT의 계열사이자 SK하이닉스가 지분 25%를 들고 있으며, 현재 SK하이닉스의 HBM3E를 사용한 제품을 준비 중입니다.

    일단 양사는 개발 중인 제품은 기존 일정대로 진행한다는 입장입니다.

    추후 합병 과정에서 밸류체인 관련 논의가 불가피해보입니다.

    이렇게 통신부터 반도체업계까지 얽히고설킨 관계를 양사가 어떻게 풀어나갈지 지켜보시죠.

    <앵커>
    박해린 산업부 기자였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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