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에서 성지순례(하지) 기간 1천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온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폭염 대비가 미비했다는 순례객들의 증언이 나왔다.
미국 CNN 방송은 성지순례를 다녀온 이들의 증언을 토대로 현지에서 순례객들을 보호할 의료진이나 기본 시설, 물 등이 충분히 제공되지 않았다고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21일 사우디에서 런던으로 돌아온 지라르 알리(40)씨는 "사람이 너무 많고 의료진이 부족했다"며 "그들은 최악 중 최악의 상황이 일어나기만을 기다렸고, 그래야만 조치를 할 것 같았다"고 전했다.
인도네시아 출신의 아흐마드(44)씨는 "집에 오는 길에 숨진 순례객들을 많이 봤다"며 "거의 수백 m마다 하얀 천으로 덮인 시신이 누워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길에서 의료진이나 구급차는 한 대도 보지 못했다며 "지역 주민이나 단체에서 물을 배급할 때마다 순례자들이 즉시 몰려들었다"고 했다.
CNN은 하지 기간 부모를 잃은 한 미국인의 안타까운 사연도 전했다.
사이다 우리 씨의 부모는 여행사 패키지 상품을 통해 평생의 꿈이던 성지순례를 떠났지만 메카의 아라파트 산에서 실종됐다고 한다. 그는 이후 사우디 제다 주재 미국 영사관으로부터 부모가 지난 15일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는데, 사인은 열사병인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씨는 여행사가 성지순례에 필요한 적절한 교통수단이나 증명서를 제공하지 않았고, 여행에 필요한 식량과 물품도 부족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하지는 무슬림이 반드시 행해야 할 5대 의무 중 하나로, 매년 이슬람력 12월 7∼12일 치러진다.
최근 몇 년 동안은 하지 기간이 여름과 겹치면서 폭염으로 심혈관 질환, 열사병 등으로 숨진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올해 집계된 공식 사망자 수는 약 500명이지만 외신들은 실제 사망자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AFP 통신은 올해 온열질환 등으로 인한 순례객 사망자를 1천126명으로 집계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망자 수를 1천170명 이상으로 추산했다. 이는 지난해 집계된 사망자 수 200여 명을 훨씬 웃도는 수치다.
사망자가 폭증하자 일부 국가에서는 성지순례 여행사에 제재를 가하는 등 조치에 나섰다.
모스타파 마드불리 이집트 총리는 하지 여행을 주선한 여행사 16곳의 면허를 박탈하고 메카 여행 불법 알선 혐의로 여행사 관리자들에 대한 검찰 조사를 명령했다.
AFP에 따르면 올해 사망자 중 절반 이상인 658명이 이집트인이라고 아랍 외교관들은 전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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