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배달업을 하는 30대 A씨는 이용자들이 올린 배달 물품을 볼 때면 한숨이 나온다며 "청소년이 분명해 보이는데 술, 담배를 사달라고 요청할 때면 난감하다"고 말했다.
그는 "술이나 담배를 사달라고 요청하면 대면으로 신분증을 확인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청소년으로 추정되는 주문자들이 '한 번만 봐달라'거나 '이전 배달원은 그러지 않았다'며 취소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배달 플랫폼이 청소년의 술, 담배 거래의 온상이 되고 있다. 미성년자들이 심부름 대행업체나 음식 배달 플랫폼을 이용해 이를 주문하는 것이다.
실제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중학생 아들을 둔 여성이 "용돈을 배달 앱에 너무 많이 써 추궁했더니, 담배를 배달해 샀다고 하더라"며 "앱으로 이렇게 쉽게 살 수 있다니 황당하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배달 플랫폼은 '배달 물품에 술, 담배가 포함돼 있다면 이용자의 신분증을 꼭 확인해야 한다'고 이용자와 기사에게 공지한다. 그러나 이를 지키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배달업에 종사하는 B씨는 "비대면으로 물품을 전달하는 게 보편화된데다 감시하는 사람도 없다 보니 술, 담배를 주문한 이용자가 미성년자로 보이더라도 눈을 감아주는 경우를 자주 봤다"며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가져다줄 것이라는 심리가 작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습관적으로 술을 마시는 청소년 역시 늘어났다고 전문가들은 본다.
이복근 청소년건강활동진흥재단 이사장은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면서 부모님 카드를 가진 아이들이 많고 성인 인증도 매우 쉽다"며 "과거 청소년 음주와 흡연은 생일, 이성과의 만남 등 이벤트적인 성격이 강했는데 이제는 비대면으로 주문할 수 있다 보니 어른들의 눈에만 띄지 않으면 어디서든지 즐길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청소년에게 술, 담배를 배달해도 적발은 물론 형사 처벌조차 쉽지 않다. 현행법은 청소년에게 술·담배를 판매하거나 대리 구매해서는 안 되며, 해당 물품을 판매, 배포할 때는 상대방의 나이와 본인 여부를 확인하도록 규정한다.
그러나 성인 인증을 거쳐 비대면으로 주문하면 판매 업주와 배달원이 청소년임을 알기 어렵기 때문에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
경찰 관계자는 "술, 담배 구입은 대부분 목격자의 신고로 처벌이 이뤄지기 때문에 적발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배달 플랫폼이 커지면서 발생하는 문제인 만큼 관련 입법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복근 이사장은 "배달 플랫폼 업체가 배달 종사자에게 술, 담배 전달 시 신분증 검사가 꼭 필요하다는 취지의 교육을 지속해서 해 의무적 노력을 다해야 한다"며 "주류 회사를 비롯해 우리 사회의 책임 있는 유관 업체들은 이 문제를 더 이상 회피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박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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