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Fed)과 일본은행(BOJ)이 동시에 설립 이후 최대 시련에 봉착하고 있다. 7월 Fed회의와 BOJ 회의에서 외형상으로 정치적 압력에 극복하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앞으로 정치적 시녀로 전락한다면 앙은행의 생명인 ‘독립성’과 ‘통화정책의 선제성(preemptive)’을 동시에 잃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림 1> 주요국의 기준금리 추이
전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던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가 끝났다. 8년 전 공화당 후보 첫 지명 당시보다 “노련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예상치 못한 발언과 행동은 여전했다. 자신의 당선에 도움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종전처럼 거침이 없었다. 부통령 후보로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J.D 밴스의 지명이 대표적인 예다.
트럼프 후보가 재집권하면 추진될 경제정책에서도 그런 흔적이 드러난다. 트럼프노믹스 2.0의 출발은 조 바이든 정부의 물가 관리 실패에서 출발한다. 공화당 선거공약집인 헤리티지 재단의 ‘프로젝트 2025’에 나타난 미국 중앙은행(Fed)의 개편안을 보면 양대 책무 중 아예 고용 목표를 빼고 물가 관리에만 주력하겠다는 공약이 포함돼 있다.
공화당 전당대회에서도 트럼프 후보는 제롬 파월 의장에게 이례적으로 금리인하와 관련해 두 가지 주문을 해 파장을 몰고 오고 있다. 하나는 파월 의장이 구상하고 있는 금리인하는 추진하지 말아야 한다고 반박했다. 다른 하나는 이 요구를 수용하면 파월 의장의 임기는 보장하겠다고 조건부 인사방침도 밝혔다.
두 가지 주문은 이번 대회 직전까지 보였던 태도에서 180도 변화된 것이라 오히려 트럼프 후보의 숨은 의도는 무엇일까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트럼프 후보는 부동산 재벌이 되기까지 저금리 혜택을 가장 많이 받아왔다. 바이든 정부의 충격요법식 금리인상으로 자신이 가장 많은 피혜를 받았다고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해 왔다.
Fed 내 중립 금리를 중시하는 친공화당 성향 이사들도 2022년 3월 이후 단기간 금리 인상으로 r* 금리가 r** 금리보다 높아졌다고 보고 있다. 중립 금리는 실물경기를 침체시키거나 과열시키지 않는 r* 금리와 금융시스템의 건전성을 훼손시키지 않는 r** 금리로 나뉜다. 전자가 후자보다 높으면 실물과 금융 간 불균형이 심화돼 각종 위기가 발생한다.
r* 금리가 r** 금리보다 높아진 여건에서 Fed가 물가만을 잡기 위해 금리인하를 늦추면 두 금리 간의 격차가 더 벌어져 상업용 부동산 부실이 더 심화된다. 이때 세수 부족을 메우기 위해 세율을 올리면 도심일수록 죽임의 도시로 내몰아 트럼프 후보에게는 최악의 상황이 닥칠 수 있다.
트럼프 후보의 금리인하 불가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고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빠르게 확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금리인하 불가 발언은 시기적으로 대선 이전에만 한정된다는 것이 트럼프 후보의 숨은 의도다. 대선 이전에 금리를 내리면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민주당 후보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 2> 미국 CPI 상승률과 부문별 기여도
오히려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면 대선 이전에 단행하지 못했던 분까지 포함해 빅스텝 방식으로 금리인하를 신속하게 단행할 것이라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올해 초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 공식 출마를 선언하는 자리에서 1년 후 자신이 취임하면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을 자처하고 뉴딜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소신과도 일치하는 시각이다.
트럼프 후보의 금리인하 불가 요구에 파월 의장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고용 지표로 보면 ‘삼의 법칙(Sahm’ rule)’에 부합돼 지금이라도 금리를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삼의 법칙이란 최근 3개월 실업률 평균치가 지난 1년간 최저 실업률을 0.5%포인트 이상 높으면 경기가 침체한다는 실증적인 이론이다. 현재는 0.6%포인트까지 벌어졌다.
물가 지표도 Fed가 가장 중시하는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상승률이 3% 이내에 들어왔다. Fed가 추정하는 통화정책 시차가 9개월∼1년인 점을 고려하면 대선 이전에 금리를 내려도 문제가 없다. 파윌 의장이 “물가가 목표치에 도달해 금리를 내리면 그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라고 발언한 것도 이 때문이다.
파월 의장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트럼프 후보의 요구를 수용하면 자신의 임기를 보장받겠지만 Fed의 전통인 독립성은 훼손된다. 반대로 거절하면 임기는 보장받지 못하지만 Fed의 전통을 지킬 수 있다. 전자를 선택할 경우도 배제할 수 없지만 파월 의장은 후자를 선택해야 한다. 7월 FOMC 회의결과를 보면 전자를 선택한 셈이다.
최근 들어 엔화 가치가 강세로 돌아서는 것이 아닌가는 시각이 급부상하고 있다. 2주 전 38년 만에 최고치인 161엔을 돌파했던 엔·달러 환율은 150엔 밑으로 급락했다. 같은 기간 중 850원대까지 떨어지던 원·엔 환율도 900원을 넘어섰다. 엔화 가치가 추세적으로 강세로 돌아선다면 엔화 투자자에게는 반가운 일이다.
특정국의 통화 가치는 머큐리(Mecury·펀더멘털) 요인과 마스(Mars·정책)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하지만 엔화 가치는 금리차와 환차익을 노리는 캐리 트레이드 자금 여건도 고려해야 한다. 저금리와 엔저를 바탕으로 경기회복을 모색하는 아베노믹스를 10년 이상 장기간 추진해 엔화 가치의 결정요인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작년 11월 초 엔·달러 환율이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150엔선이 뚫린 이후 일본 정부의 엔화 강세로 돌려놓기 위한 환시 개입이 번번이 실패했다. 재무성이 주관한 달러 매도 개입은 캐리 자금 여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개입 수단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 외환시장 역사상 최대 규모인 외화만 낭비했을 뿐이다.
가뜩이나 ‘아오키 법칙(내각과 집권당 지지도가 50% 밑으로 떨어지는 현상)’에 걸려있는 상황에서 환시 개입에 실패했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모테기 도시미쓰 자민당 간사장은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에게 서둘러 기준금리를 인상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캐리 자금 여건상 엔저를 막기 위한 조치로 충분히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종전과는 180도 바뀐 태도라 이번 기회를 통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영향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수순이지 않느냐고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오히려 차기 총리로 거론되고 있는 모테기 간사장이 금리 인상을 더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어 이러다간 BOJ가 정치의 시녀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가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우에다 총재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과연 기시다 총리와 모테기 간사장의 금리 인상 압력을 받아들일 것인가 여부다. 올들어 일본 경제는 1분기 성장률이 -0.5%로 마이너스 국면으로 추락했다. 그나마 일본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수출과 한국인의 관광 수입이 엔화 가치마저 강세로 돌아서면 더 깊은 나락으로 빠질 확률이 높다.
우에다 총재의 선택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정치적 압력에 굴복하면 자신의 임기는 보장받겠지만 BOJ의 독립성은 훼손당한다. 다른 하나는 정치적 압력을 거부한다면 BOJ의 독립성은 유지하지만 자신은 조기 교체당할 수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우에다 총재는 동일 운명에 놓은 있는 파월 Fed 의장보다 정치적 성향이 높은 점이다.
결국 파월 의장보다 우에다 총재가 정치적 압력이 국복할 가능성이 높다. 7월 BOJ에서도 금리를 올렸다. 만약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BOJ의 앞날은 어떤 경로를 갈을 것인가? 최소한 현재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는 힘든 것으로 예상돤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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