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의 '판사 직선제'가 행정부의 강력한 도입 의지와 거대 여당의 속전속결 표결 밀어붙이기로 본격 시행을 눈앞에 뒀다.
멕시코 상원은 밤샘 토의와 새벽 표결을 거쳐 재적 의원(128명) ⅔를 턱걸이로 넘는 86명 찬성으로 사법부와 관련된 여러 조항을 수정·폐지하는 법안을 11일(현지시간) 가결 처리했다. 반대는 41명, 기권은 0명이었다. 1명은 투표하지 못했다.
일주일 전에 하원을 먼저 통과한 사법부 개편안은 사실상 공포 절차만 남겨뒀다.
현지 일간 엘우니베르살은 "규정상 개정안 효력이 발생하려면 32개 주의회 과반(17개) 의결이 선행돼야 하는데, 현재 여당 동맹이 다수인 주의회는 24개"라며, 주의회 과반 의결을 '기정사실'로 분석했다.
개편안 골자는 7천여명의 법관(대법관 포함)을 국민 투표로 선출하는 판사 직선제 도입, 대법관 정원 감축(11명→9명), 대법관 임기 단축(15→12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만 구성, 대법관 종신 연금 폐지, 법관 보수의 대통령 급여 상한선 초과 금지 등이다.
객관성·공정성에 어긋난 판결을 한 판사 등을 대상으로 하는 고등징계법원 신설 근거도 담았다.
좌파 집권당 국가재생운동(MORENA·모레나) 동맹은 의회를 개원한 첫날(1일)부터 곧장 논의에 들어가 열흘 만에 사법부 개편안을 일사천리로 처리했다.
이 과정에서는 논란과 진통도 뒤따랐다.
'판사들의 정치화'라는 이유로 개편안에 반대하며 몇주 전부터 파업 중이었던 사법부 노조는 법학부 대학생들과 함께 지난 6월 총선에서 압도적인 하원 의석을 확보한 여당 측 의원들의 의회 출입을 막았고, 여당 측은 이에 지난 3∼4일 멕시코시티의 한 체육관에서 논의와 표결 절차를 진행했다.
시위대는 이번 상원 심의를 앞두고도 의회 방청석(2층)과 회의장(1층)에 밀고 들어가 농성을 벌였지만, 휴회 후 대체 회의실을 확보한 여당은 법안을 상정하고 의결했다.
특히 상원에서는 여당 동맹 의석이 85석이어서 전원 찬성하더라도 가결에 필요한 1표가 모자랐지만, 우파 국민행동당(PAN) 소속 한 의원의 '변심'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현지 일간 레포르마는 보도했다.
이에 따라 '사법부 개혁' 주장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개진했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이달 말 퇴임 전 '마지막 퍼즐'을 완성하게 됐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법률 개정이 필요한 정책들을 대통령령 등 다른 방법으로 추진하려다 '위헌' 또는 '헌법불합치' 등을 이유로 제동을 걸고 나선 대법원에 대해 그간 강한 불만을 표해 왔다.
그는 평일 아침 진행하는 정례 기자회견에서 "인본주의적 사명을 가지고 내놓은 제안들이 최고 권력자를 비호하는 일부 사법부 구성원에 의해 무산됐다"며 수시로 대법관을 비판했다. "대법원이 야당의 참호로 변질됐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이날 "우리가 세계의 모범이 될 것"이라고 자평했고, 그의 정치적 후계자인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 당선인도 "사법 행정을 강화하고 부패를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상원 의결을 환영했다.
주변국에서는 멕시코 판사 직선제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인다.
멕시코와 함께 역내 무역 협정을 맺고 있는 미국과 캐나다는 앞서 판사 직선제 등에 대해 입법·행정부 견제력 상실로 "투자환경이 악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켄 살라자르 주멕시코 미국 대사는 지난달 22일 "멕시코 판사를 직접 선출하면, 마약 카르텔과 범죄자가 정치적 동기를 가진 법관을 더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가, 멕시코 정부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날 멕시코 상원 밖에서는 법관들과 사법부 직원들이 상·하원을 성토하며 시위를 이어갈 뜻을 밝혀, 내부 반발은 당분간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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