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호 디지털헬스케어 기술특례 상장사인 '라이프시맨틱스'의 신사업 선언에 업계가 계속해 의문을 표하고 있다.
신사업 내용은 그간 집중해오던 디지털의료기기(DTx)나 의료AI 분야가 아닌, '우주·항공 유통'이다. 사업 비중이 우주·항공으로 옮겨가는 것은 물론, 사명이 바뀔 가능성도 커졌다.
●최광수 신임대표 "합병·사명 변경 고려…주 사업은 우주"
지난 9월 라이프시맨틱스 신임 대표이사로 임명된 최광수 대표는 지난 18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라이프시맨틱스와 스피어코리아의 합병을 고려하고 있으며, 합병 작업이 완료되면 사명 변경을 생각하고 있다"며 "디지털헬스케어 분야의 적자가 이어진다면 라이프시맨틱스의 주 사업은 디지털헬스케어가 아닌 물류창고 확보를 통한 우주·항공 유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디지털헬스케어 사업은 '뒷방'으로 밀려나는 셈이다.
익명의 라이프시맨틱스 관계자는 한국경제TV와의 인터뷰를 통해 "최근 스피어코리아가 최대주주가 된 이후로 기존의 디지털헬스케어 분야 담당자 인력 이탈이 꽤 많아졌다"며 "새 경영진이 '내년까진 (헬스케어 분야를) 끌고 가보자'는 말은 했지만, 조금씩 줄여나가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술특례상장 제도가 준비가 덜 됐지만 특정 분야에 장래가 밝은 기업에게 일종의 특혜를 주는 것인데, 해당 분야를 축소한 채로 끌고가게 된다는게 아쉽다"며 "1호 디지털헬스케어 기술특례 상장사라 더욱 그런데, 새로운 경영진은 라이프시맨틱스의 기술 대신 '상장사'라는 간판이 필요한 건 아닌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라이프시맨틱스는 지난 2021년 디지털헬스 혁신 사업모델로 코스닥 시장에 기술특례상장했다. 디지털의료기기 기업으로는 1호 상장(사업모델 기술특례상장은 코스닥에서 5번째)이라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디지털헬스 기술 플랫폼을 기반으로 디지털의료기기를 개발해왔으며, 원격모니터링을 지원하는 비대면 진료 서비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라이프시맨틱스가 COPD·폐암 환자의 호흡재활을 대상으로 만든 디지털의료기기 소프트웨어 '레드필 숨튼'은 당시 '국내 3호 디지털치료기기' 후보로 거론된 바 있다. 그러나 지난해 확증 임상시험에서 평가변수로 설정한 '6분 보행거리 변화량(6분동안 걷는 검사를 통해 환자의 운동능력 개선을 살핀다)'이 대조군에 비해 효과를 입증하지 못해 임상에 실패했다. 현재는 임상 설계를 바꿔 재도전 중이다.
올해 7월에는 창업자인 송승재 대표가 라이프시맨틱스를 떠났다. 사실상 경영권 매각이다. 이후 송 대표가 연락처를 바꿔 '잠적설'도 돌았으나, 업계에서는 새로운 둥지를 찾았다는 말이 돈다. 라이프시맨틱스는 스피어코리아를 대상으로 한 57억원 규모, 333만 2,400주 제 3자 배정 유상증자를 결의했고, 스피어코리아는 유상증자 납입을 통해 라이프시맨틱스의 새로운 최대주주가 됐다.
9월에는 10억원 가량의 3자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하기도 했다. 운영자금 등이 목적이며, 주당 가격은 2,890원(보통주 34만 6,020주 발행)이다. 3자배정 대상자는 '에이치와이조합'이다.
●S모 회사 1차 벤더사?…신뢰성 의문 제기도
스피어코리아는 국내에 크게 알려지지 않은 회사다. 최 대표에 따르면 로켓발사체 핵심 부품에 필요한 특수합금을 개발·공급하며, 2022년 말~2023년 초 회사가 만들어졌지만 스피어US라는 미국 법인을 통해 미국 민간 우주항공업체(S모 회사)의 1차 벤더사로 활동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최 대표는 "스피어코리아는 올해 상반기 매출 450억원, 영업이익 87억원을 달성했으며, 이는 미국 민간 우주항공업체의 납품사라 가능했다"며 "지금도 미국 민간 우주항공업체와 활발하게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다음주에도 해당 회사에서 사람이 온다"고 말했다. 최 대표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일부는 의문을 제기한다. '해당 기업과 거래한다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다. 최 대표는 해당 우주항공업체와 비밀유지계약을 했기 때문에 자세히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다.
최 대표의 과거 행보도 의문을 더한다. 최 대표는 지난해 엑소좀 기반 바이오 회사인 프로스테믹스(이후 사명은 스피어파워를 거쳐 아크솔루션스로 변경)의 공동 대표이사를 맡은 바 있다. 2023년 7월 프로스테믹스는 사명을 스피어파워로 바꾸고 철강·특수합금 신사업을 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이렇다 할 신사업 성과가 없었다. 매출의 대부분(90% 이상)은 물티슈 등 생활건강 사업 분야에서 나오고 있으며, 철강이나 특수합금 분야에 대한 매출은 없는 상태다. 다만 최대주주 변경 예고 당시 전환사채(CB)를 발행했으며, 신사업 기대감으로 주가가 급등락을 반복했다. 일각에서는 라이프시맨틱스가 이와 비슷한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기술특례사업 접어도 규정상 문제는 없다"
한편 기술특례상장 기업이라도, 기술평가 대상이었던 사업을 폐기하거나 축소해도 현재로선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상장 전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현재 거래소 규정상 이미 상장했다면 평가 대상었던 사업을 계속해야 한다는 제한이 없다"고 말했다.
AI 의료기기 업계 관계자는 "디지털헬스케어 분야가 커지면서 기업들의 옥석가리기가 시작되는 상황"이라며 "매출을 내기까지 시간이 걸리는데다 제약이 큰 만큼, 해당 분야 기술특례상장 기업이라 해도 합병 등을 통해 전혀 다른 분야로 방향을 돌리는 기업이 더 나올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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