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증시가 사상 처음 2만 선을 돌파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 회의에 앞서 공개된 소비자물가지수가 시장 예상 범위에 머물렀고, 대형 기술기업인 알파벳이 혁신적인 퀀텀 컴퓨팅 기술을 공개한 영향으로 반도체주 중심의 강세가 이어졌다.
현지시간 11일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기술주 중심으로 이뤄진 나스닥은 하루 만에 347.65포인트, 1.77% 급등해 2만 34.89로 사상 처음 2만 선을 돌파했다. 이는 지난 팬데믹 당시 2020년 6월 사상 첫 1만을 넘어선 뒤 4년 만이다. 뉴욕 증시에서 이날 엔비디아, 테슬라 등의 강세로 S&P500 지수도 전날보다 49.28포인트 0.82% 뛴 6,084.19로 올라섰다. 다만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유나이티드헬스그룹의 임원 총격 사망 사고 여파로 급락한 여파에 0.22% 내린 4만 4,148.56에 그쳤다.
●4년 만에 또 대기록..미 기술 패권의 상징 나스닥
첨단 기술기업의 무대인 나스닥의 이날 종가 기준 시가총액은 약 20조 달러로 추정된다. 이는 중국의 명목 GDP보다 높고, 일본과 독일, 인도 등을 더한 것보다 큰 규모다. 나스닥은 1971년 2월 설립해 세계 최초의 전자 거래시스템을 기반으로 장외 기업들 끌어들여 자금줄이 됐고,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아마존등 대형 기술기업이 탄생하는 배경이 됐다.
나스닥은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닷컴 버블과 랠리로 2천년 3월 사상 첫 5천선을 돌파했으나, 이내 수익 구조가 마련되지 않은 인터넷 혁신의 실체가 드러나고, 연준의 가파른 기준금리 여파가 더해지며 2년 만에 지수가 5분의 1토막이 나는 충격을 겪기도 했다.
인터넷 버블로 경제 충격이 심화하자 미 연준(Fed)가 당시 2001년 기준금리 6.5%에서 같은해 말 1.75%까지 인하해 가까스로 지수의 추가 하락은 멈췄다. 그러나 당시의 나스닥은 2008년 금융위기 직전까지도 당시 지수를 회복하지 못할 만큼 큰 거품을 떠안고 있었다. 이러한 나스닥은 2007년 애플 아이폰의 등장으로 인한 모바일 혁명과 이를 기반으로 한 플랫폼 기업들의 성장에 힘입어 약 15년 만에 당시 지수를 회복했다. 이후 아마존, 구글, 메타를 비롯해 원조 소프트웨어 공룡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가 클라우드 경쟁에 뛰어드는 무대가 되면서 2018년 8천선, 2020년 6월 1만 선을 돌파했고, 2년전 오픈AI가 일으킨 첨단 반도체 수요와 투자 열풍이 4년 만의 대기록을 쓰게 됐다.
지난 미 대선 이후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로 지수를 밀어올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튿날인 12일 목요일 오전 뉴욕증권거래소의 개장 행사에 참석해 랠리를 축하할 예정이다.
● 인플레이션 진전 더뎌졌지만..고착화된 물가는 잡히는 중
미 뉴욕증시가 이처럼 대기록을 쓰게 된 배경은 연준(Fed)의 통화 완화에 대한 기대가 다시 살아났기 때문이다. 현지시간 11일 미 노동부 노동통계국(BLS)가 공개한 11월 소비자물가지수는 헤드라인(전체항목) 기준 전월 대비 0.3%로 시장 예상치인 0.3%와 같았다. 전년대비 상승폭은 2.7%로 시장 컨센서스인 2.7%와 같았으나, 역시 10월 집계치인 2.6%보다 0.1% 높아졌다.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지수도 전월 대비 0.3%, 연간 기준으로는 3.3%로 시장 컨센서스와 동일했다.
인플레이션 둔화 추세가 더뎌졌지만, 월가는 이번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분의 40%의 비중을 차지한 주거비에 주목했다. 주거비 항목은 전월 대비 0.3% 상승에 그쳐 지난 10월 이후 두 달째 둔화 추세를 이어갔다. 특히 주택소유자가 임대를 할 경우를 가정한 물가, 이른바 주택소유자 등가임대료(OER)도 10월 0.4%에서 11월 0.23%로 대폭 낮아졌다. 이는 2021년 1월 이후 가장 작은 상승률이다.
다만 추수감사절 등을 끼고 일반 가정에서 소비가 늘어난 육류와 계란 가격은 크게 뛰었다. 스케이크용 쇠고기 가격이 한 달 전보다 4.2%, 달걀 가격은 10월 6% 넘게 하락하던 것에서 8.2% 치솟았다. 그 밖에 의류 가격이 10월 -1.5%에서 0.2%로 상승 전환했고, 신차 가격도 보합에서 0.6%로 뛰었다.
월가는 다소 더딘 물가 하락 속도에도 연준(Fed)이 오는 17~18일 진행하는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인하할 것으로 전망한다. 뱅가드의 수석 미국 이코노미스트인 조쉬 허트는 “이번 소비자물가지수는 연준의 0.25% 인하라는 시장의 기대를 뒷받침한다”고 평가했고, JP모건의 글로벌 수석 전략가인 데이비드 켈리는 “인플레이션 여건이 아직 안정적”이라면서 “별다른 충격이 없다면 소비자물가지수는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는 보고서에서 인플레이션 둔화는 지속되고 있고, 이에따라 내년 근원 소비자물가는 3%대가 아닌 2.4%까지 금리 인하의 여력을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의류, 항공, 자동차 보험 가운데 옷 값만 올랐다는 점도 인플레이션의 추가적인 상승 위험이 덜하다고 평가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선물 거래를 바탕으로 FOMC 금리 전망을 집계한 페드워치(FedWatch)는 전날 85%에서 10%포인트 높은 95% 확률로 이번달 인하를 예상하고 있다. 현재 연준은 지난 9월 이후, 연방 기금금리를?0.75%포인트 내린 4.5%~4.75% 범위로 유지하고 있다. 이달까지 추가 인하하면 연간 총 인하폭은 1.0%포인트가 된다.
● 오픈AI 밀렸던 주도권 찾았다…구글, 이틀째 5%대 '사상 최고가'
증시 랠리의 또 다른 배경은 기술기업의 혁신이다. 전 세계 검색 시장을 바탕으로 성장해온 알파벳은 전날 혁신적인 양자 컴퓨팅 기술을 선보여 이틀째 5%대 강세를 이어갔다.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는 전날 “혁신적인 큐비트 반도체로 거의 30년간 양자 컴퓨팅 분야의 핵심 난제였던 양자 오류에 대한 해결책을 찾았다”며 시장에 놀라움을 줬다. 양자 컴퓨팅은 기존 0과 1의 조합을 차례대로 풀어나가던 연산장치를 0과 1이 동시에 존재하는 양자상태로 만들어 연산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인 기술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극한의 조건이 갖춰져야 하고, 주변 환경에 따라 오류가 발생하기 쉬워 현실 세계에 이용하기까지 어려움이 많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구글은 이번 기술 혁신을 바탕으로 의학 등 실제 세계에 적용하기 위한 작업을 이어나가겠다는 구상이다. 이번 발표로 알파벳은 클래스A주 기준으로 5.53% 오른 주당 195.4달러로 이틀째 랠리를 이어갔다.
통신칩과 위탁 반도체 설계 기술을 가진 브로드컴은 애플이 자체적인 AI 서버용 반도체를 함께 개발하고 있다는 디인포메이션의 보도로 6.63% 뛰었다. AI에 기반한 반도체 산업의 성장 기대가 다시 이어지며 이날 마이크론은 4.03%, 엔비디아도 3.14%로 모처럼 반등했다.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는 하루 2.72% 올라 5천207.80을 기록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통령 당선 과정에 최대 기부자로 참여한 일론 머스크는 이날 증시 랠리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자산 4천억 달러를 보유하게 됐다. 그가 이끄는 미국 최대 전기차 기업인 테슬라는 2021년 11월 4일 기록한 전고점을 3년 1개월 만에 돌파했다. 스트리밍 플랫폼을 운영하는 넷플릭스도 이날 2.54% 올라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따. JP모건은 지난 제이크 폴과 마이크 타이슨의 이벤트 경기로 일일 활성이용자가 예상이상으로 증가했다고 보고 4분기 순증 구독자를 넷플릭스 자체 전망의 2배인 1천만 명으로 제시했다. GE버노바는 제너럴일렉트릭에서 분할 상장한 이후 사상 처음 분기 배당을 발표해 4.98% 올랐다. 반면 제너럴모터스는 자율주행 기술기업인 크루즈 사업 포기 소식에 -1.35%, 협력 업체였던 우버도 -5.8% 하락했고, 이날 부진한 가이던스를 내놓은 어도비는 시간외에서 6%대 하락을 기록했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