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앞서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사람의 귀중함을 알라"
<※ 편집자 주 = 사회 전반이 어렵습니다. 서민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지고 있습니다. 서로 나누고 배려하고 양보하는 우리의 '전통 미덕'이 아쉬운 상황입니다. 연합뉴스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책무)'와 자기희생을 실천한 명문가에서 배우는 '나눔의 리더십' 시리즈를 매일 1건, 총 9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 "우당은 늘 시대를 앞서고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노력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당은 거기서 사람이 귀중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 갈등을 풀 열쇳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실천한 것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입니다."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 교육자였던 우당(友堂) 이회영(1867∼1932) 선생의 손자인 이종찬 우당장학회 이사장은 우당의 정신을 새로운 것에 대한 갈구와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요약했다.
우당은 '오성과 한음'의 '오성'으로 잘 알려진 백사 이항복의 후손이다. 아버지도 이조판서를 지냈을 정도로 구한말 명문가 집안이었다.
독립운동가로 이름을 떨친 우당 이후에도 동생인 이시영이 초대 부통령을 지내고 손자들인 이 이사장과 이종걸 의원도 4∼5선 의원을 지내는 등 지금까지도 명문가로 꼽힌다.
실제로 우당은 이 이사장이 설명한 대로 시대 흐름을 읽어 새로운 문화를 수용하는 데 열심이었다. 과거시험을 보지 않고 신학문과 개신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대표적이다.
이 과정에서 우당은 적서타파와 노비해방을 주장하고 여성 개가(재혼)에 찬성하는 등 뛰어난 인권 감수성을 보여줬다.
말로만 주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여동생을 실제로 개가시키는 등 품은 생각을 그대로 실천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개신교를 받아들일 때도 양반가 출신 신자가 많았던 정동교회 대신 남대문시장 한복판의 상동교회를 선택했다. 상동교회는 숯장수 집안 출신 전덕기 목사가 목회를 맡은 일종의 '민중교회'였다고 전해진다.
경술국치 후 우당은 전 재산을 정리해 만주로 망명해 항일 독립운동을 펼쳤다. 당시 집안 노비를 모두 면천시키고 망명하는데, 이때 노비 대부분이 우당 집안을 좇아갔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우당은 이들을 신흥무관학교에 입학시켜 독립군으로 길러냈다. 자기 아들도 똑같이 무관학교에 입학시켜 같은 교육을 받도록 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내보였다.
심지어 양반가 부인이던 자신의 아내가 다른 평민·노비출신 여성들과 함께 무관학교 학생들의 밥·빨래를 하게 하는 등 신분제 사회였던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던 평등의식과 나눔을 실천했다.
이 이사장은 "최근 촛불집회 과정에서 '민심이 천심이다'라는 말이 나오던데 이는 우당이 영향을 받은 동학(東學)의 인내천(人乃天·사람이 하늘이다) 사상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라며 "사람이 귀중하고 사람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우당의 깨달음이 이처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시대를 앞서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설명했다.
우당은 갈등이 생겼을 때 늘 인간 중심주의와 행동주의를 택했다는 것이 이 이사장의 설명이다.
예컨대 임시정부 내에서 권력을 두고 지역·이념 갈등이 벌어졌을 때도 단재 신채호와 함께 갈등을 조정하려고 노력하다가 여의치 않자, 권력보다는 사람이 먼저이고 대립보다는 행동이 먼저라는 생각으로 임정을 떠났다는 것이다.
우당이 후일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로 활동하게 된 것도 권력에 대한 염증과 사람의 귀중함에 대한 깨달음, 행동주의 등이 결합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러한 우당 정신의 유산은 우당 동생인 이시영 초대 부통령이 국민방위군 사건 등을 계기로 이승만 정권에 실망해 부통령직에서 스스로 물러난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이사장은 "최근 촛불집회에서 무질서 속에 질서가 있는 모습을 목도했는데, 이 역시 우당의 아나키즘과 닮았다"며 "촛불집회 이후 제왕적 대통령제를 해체해 권력이 분산된 탈권력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당의 정신대로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우당의 정신을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매일 새로워짐)으로 요약해 가훈으로 정했다는 그는 지금이 개화기 때처럼 사회가 급변하는 시기이므로 청년들이 우당을 좇아 새로운 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실천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comm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