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의의 크고 수량 적으면 가격↑…애플1 컴퓨터는 수억원대
(서울=연합뉴스) 김태균 기자 =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 IT(정보기술) 기기는 빠른 제품 유행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통상 가치가 급감하지만, 하나 예외가 있다.
전원도 안 켜질 것 같은 낡은 모델이 '희귀 아이템', '골동품'으로 변신해 경매에서 뜻밖의 높은 가격에 팔리는 것이다.
7일 IT 업계에 따르면 이런 '빈티지' IT 기기의 대표 사례로는 2007년 발매된 첫 아이폰(아이폰 1)이 있다.
출시 당시 박스까지 갖춘 아이폰 1은 이베이 등 외국 사이트에서 1만5천∼9천 달러에 팔린다. 한화로는 1천800만∼1천만원대로 최신 아이폰 7보다도 훨씬 비싼 가격이다.
애플의 첫 제품이자 초창기 PC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애플 1'(1976년 발매)은 한화로 억 단위에 거래된다. 시판 대수가 200대라 물건 자체가 희귀하기 때문이다.
작년 8월 미국 경매에 나왔던 애플 1의 낙찰가는 81만5천달러(9억7천100만원)이었다. 제주도 넥슨컴퓨터박물관이 소장한 애플 1도 2012년 경매에서 4억3천만원을 주고 산 물건이다.
피처폰 시절 멋진 디자인 덕에 팬이 많았던 단말기인 모토로라 '스타텍'(StarTAC)도 인기 애장품이다. 발매된 지 20년이 된 기기가 이베이 등 웹사이트에서 700∼600달러(83만4천∼71만5천원)에 팔린다.
오래됐다고 모든 IT 기기가 비싼 값을 받는 건 아니다. 넥슨컴퓨터박물관의 설명에 따르면 빈티지 기기는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있어야 한다. '당대 최초·최고' 같은 수식어가 필요하다.
악명 높던 제품이 후일 몸값이 뛰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아타리 쇼크'의 상징이었던 졸작 게임 'ET'는 요즘 국외에서 카트리지당 수만원에 팔린다.
아타리 쇼크는 1983년 미국의 인기 게임기 '아타리 2600'이 저질 게임을 남발하면서 현지 게임 시장이 아예 붕괴한 사건이다. 특히 당시 ET는 '세상에서 제일 못 만든 게임'이라는 혹평이 쏟아져 제작사 아타리가 못 판 카트리지를 사막에 파묻을 정도로 골칫덩이였지만, 지금은 그 '잔혹사'와 희소성에 취한 사람들의 소유욕을 자극하는 존재가 됐다.
제품이 잘 작동하는지도 인기 애장품의 핵심 요건이다. IT 기기는 운영체제 등 내부 소프트웨어(SW)의 동작 모습도 중요한 '감상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제품 박스·사용 설명서·영수증 등 구매 당시의 흔적이 온전히 남은 제품도 가격이 크게 뛴다.
한국은 미국 등 선진국과 달리 고전 IT 기기의 매매가 아직은 드물다. 빈티지 기기의 수요를 뒷받침하는 마니아·키덜트(아이 같은 성향의 어른) 문화의 역사가 서구보다 훨씬 짧기 때문이다.
넥슨컴퓨터박물관에서 전시물 관리를 맡는 우상곤 주임은 연합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초창기 국산 컴퓨터를 입수하려면 소유자를 어렵게 수소문해 구매해야 할 때가 많다"며 "오프라인 골동품 경매를 가도 백자·옛날 그림 등이 주류이며 IT 기기가 매물로 나오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라고 말했다.
t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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