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내각, 한일합의 수호에 총력 대응 태세…한국은 외교 공백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이상현 기자 = 위안부 문제로 한일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가운데 이달 20일 출범하는 도널드 트럼프 차기 미국 행정부가 해당 사안을 포함해 한일 갈등에 어떤 태도를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이와 관련해 일본이 트럼프 차기 행정부의 마음을 사고, 한일 간 공방에서 우위를 차지하려고 트럼프 측과의 접촉면을 발 빠르게 넓혀가는 반면 한국은 대통령 탄핵 정국 속에서 미국을 상대로 한 '이슈 선점' 외교전에서 밀리는 형국이 지속하고 있다.
우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트럼프 당선인의 취임 전부터 적극적인 구애 공세를 펴는 점이 눈에 띈다. 이른 시일 내에 아베·트럼프의 정상회담 가능성도 가시화하고 있다. 일본의 의도대로 조기에 미일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그 자리를 이용해 아베는 위안부 한일합의에 대한 지지를 요청할 것으로 예상돼 주목된다.
일본은 지난해 말부터 트럼프와 아베 신조 총리의 첫 정상회담을 이달 27일께 백악관에서 여는 방안에 대해 미국과 협의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지지통신에 따르면 미국을 방문 중인 가와이 가쓰유키 일본 총리보좌관은 지난 6일(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의 마이클 플린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를 만나 정상회담 개최 방안을 1시간가량 논의했으며, 이 자리에서도 관련 요청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베의 미국을 향한 지원 요청은 주도면밀하게 이뤄지는 모양새다.
아베 총리는 일본의 주한대사 일시귀국 등 발표 당일인 지난 6일에도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일 정부가 책임을 갖고 시행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에 역행하는 것은 건설적이지 않다"고 강조하면서, 사실상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아베-바이든 통화에서, 바이든 부통령은 주한 일대사 소환과 통화 스와프 협상 중단 등 일본 정부의 조치에 대해 상황 악화의 자제를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일본 언론매체들은 아베-바이든 통화를 보도하면서, 소녀상 문제에 대한 아베의 일방적인 언급만을 집중적으로 보도해 눈길이 쏠렸다.
이런 가운데 미 국무부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 이행이 바람직하다'는, 일본에 유리하게 해석될만한 발언이 나와 주목된다.
NHK는 7일 인터넷판 영문 기사에서 존 커비 미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 6일(현지시간) 한 뉴스 컨퍼런스에서 "미국은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가 한일관계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믿는다. 위안부 합의가 치유와 화해를 증진하는 방향으로 역사적인 문제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한 대목을 부각해 미 국무부가 한일 위안부 합의를 준수하라고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언론매체들이 한일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미국이 일본 편을 들고 있다는 취지의 기사를 쏟아내는 과정에서는 오보도 나왔다.
8일 아사히신문은 바이든 부통령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한일관계의 평화적 해결을 요청했다고 보도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이 신문은 바이든이 황 권한대행에게 "동아시아 안보환경이 냉엄한 가운데 한미일이 협력해야 한다. 한일 양국이 평화적인 외교로 문제를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전했으나, 총리실은 통화사실 자체가 없다고 부인했다.
일본이 이처럼 미국을 상대로 한 이슈 선점전에 치열하게 뛰어드는 것은 미국의 외교정책의 윤곽이 그려지는 정권 이양기에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서다. 트럼프 측의 한·미·일 삼각동맹에 대한 구상이 아직 구체화되는 않은 점을 고려, 선제적인 트럼프 공략으로 일본의 이익을 최대한 관철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쿠보 후미아키(久保文明) 도쿄대 교수는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미-일 안보 관계의 구체적인 부분들까지 알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베가 할 일은 트럼프에게 미-일관계의 기초(Lesson 101)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국의 노력은 일본 측에 크게 못 미치고 있어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면서 직무가 정지된 가운데 우리 정부의 대응에 한계가 있는데다 야권과 시민사회에서 위안부 합의 폐기와 전면 재협상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 외교당국으로선 부담이 작지 않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현 시기에 대해 "리더십이 부재하는 과도기이자 정상중심외교의 중단상태"라며 "이 기간이 길어지면 전략적 이익과 국익이 손상될 가능성이 크므로 하루빨리 국정의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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