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실패끝 볼펜심용 강철 개발…2년내 자국산으로 교체
(상하이=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 = 중국의 뒤처진 기술력을 꼬집으며 "볼펜 하나 제대로 못만드냐"고 한탄했던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의 소원이 드디어 이뤄졌다.
중국 관영 인민일보는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의 볼펜 제조업체인 베이파(貝發) 그룹이 자국 철강업체로부터 볼펜심용 스테인레스 강선을 공급받아 완전 국산화한 볼펜을 개발 중이라고 10일 보도했다.
중국이 그리 어렵지 않아보이던 볼펜의 국산화를 오랫동안 이루지 못했던 것은 흔히 볼펜심이라 불리며 펜끝에 붙어있는 고강도 원형금속 '볼'을 자국 기술로 만들지 못했던 것이 원인이었다.
볼펜은 이 원형의 '볼'이 종이와의 마찰로 회전하는 것에 의해 잉크를 뽑아내면서 필기가 이뤄지는데 통상 스테인레스강이나 크롬강으로 만들어지는 '볼'은 마모가 작고 녹이 슬지 않으면서도 형질의 변형이 적어야 한다.
한국도 1963년 모나미153 볼펜의 첫 생산을 시작했으나 크롬강으로 만든 '볼'의 국산화는 1975년에야 이뤄졌다.
볼펜심은 거대 인프라 설비를 건설하고 우주에 유인 우주선을 보내고 있는 중국의 원초적인 기술 한계를 상징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중국은 세계 철강의 절반 이상을 생산하면서도 볼펜심을 비롯한 고강도 첨단 금속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점을 부끄러워했다.
중국은 한해 380억개의 볼펜을 생산해 전세계에 수출하며 세계 수요의 80%를 충당하고 있으나 볼펜심용 스테인레스강과 생산설비, 잉크 등의 90%는 일본과 독일, 스위스에서 수입하고 있다.
이로 인해 개당 2달러(2천407원)에 팔리는 볼펜 하나에서 중국이 벌어들이는 수입은 10센트(120원)에 불과하다.
리 총리도 이런 현실을 파악하고 공개석상에서 개탄해 마지 않았다. 그는 지난 2015년 12월 전문가 좌담회에서 중국에 3천여개가 넘는 볼펜 회사들이 있지만 핵심기술인 볼펜심과 잉크를 만드는 기술이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리 총리는 "현재 중국이 직면한 현실이 그러하다"면서 "우리는 부드럽게 쓰여지는 기능을 가진 볼펜을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리 총리는 이듬해 1월에도 철강산업의 공급과잉 문제를 지적하면서 볼펜심을 포함해 고품질 철강 제품은 수입해야 하는 처지라고 한탄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며 제조강국으로 떠올랐지만 정작 한자루의 볼펜조차 완전 국산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조감을 토로한 것이다.
절치부심하던 중국 정부는 2011년 볼펜 국산화를 중점 연구개발사업으로 선정하고 2014년까지 6천만 위안(105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볼펜 재료장비의 연구개발에 나섰다.
그 결과 중국 최대의 스테인레스강 생산업체인 타이위안(太原) 강철이 5년여의 시간을 들여 지난해 9월에야 2.3㎜의 일정한 두께로 사출되는 볼펜심용 스테인레스 강선 합금에 성공했다.
이 회사 엔지니어 왕후이미엔(王輝綿)은 "'볼' 생산기술은 외국기업들의 핵심 기밀로 반드시 스스로 개발해야 한다"며 "어떤 참고자료도 없이 끊임없이 데이터를 누적하고 수치를 조정해가며 실패를 거친 끝에 '메이드인 차이나' 타이틀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베이파그룹은 현재 타이위안강철로부터 받은 원료로 볼펜심을 제조해 극한 시험을 진행 중이다. 동일 각도에서 볼펜심은 연속으로 끊기지 않고 800m의 선을 그을 수 있어야 하는데 이미 6차례의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베이파그룹 관계자는 "볼펜은 매우 정교한 기술 수준을 요구한다"며 앞으로 2년안에 중국에 수입되는 볼펜심용 철강을 완전히 자국산으로 교체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joo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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