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과 쌍벽 이룬 선비 성혼, 그는 어쩌다 잊혔나

입력 2017-01-10 11:09  

율곡과 쌍벽 이룬 선비 성혼, 그는 어쩌다 잊혔나

한영우 명예교수 '우계 성혼 평전' 출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퇴계 이황(1501∼1570)과 함께 조선시대 최고의 학자로 꼽히는 율곡 이이(1536∼1584)에게는 평생을 함께한 절친한 친구가 있었다. 본가인 경기도 파주에서 20세 때 만난 우계 성혼(1535∼1598)이다.

두 사람은 뛰어난 학문적 업적을 남긴 학자의 위패를 모신 문묘(文廟)에 1682년 나란히 배향됐고, 경기도와 충청도를 아우르는 기호지방을 근거지로 한 기호학파에서 쌍벽을 이루는 인물로 추앙받았다.

율곡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계를 알아야 하지만, 오늘날 성혼이라는 이름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는 신간 '우계 성혼 평전'(민음사 펴냄)에서 "이이와 성혼은 실과 바늘처럼 붙어 다닌 관계였다"면서 "성혼도 이이와 비슷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어야 마땅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성혼의 학문과 사상을 담은 단행본도 나왔고 '우계학보'라는 학술지도 정기적으로 간행되고 있지만 "성혼에 대한 연구가 유학사의 시각에서만 이뤄진 까닭에 사람들이 친숙하게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가 보기에 성혼은 참된 선비의 전형이다. 그는 성혼에 대해 부귀영화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강직하고 청렴한 성품과 폐인의 몸으로도 임금을 향해 목숨 걸고 직언을 토해내는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성혼은 일생을 파주에서 은거한 아버지 성수침(1493∼1564)의 영향을 받아 벼슬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으며, 학문 수행과 후진 양성에 매진했다. 또 세심하고 겸손한 성품으로 선비들의 존경을 받았다.

이는 개방적이고 활달한 성격인 율곡이 17세에 과거에 급제한 뒤 벼슬하기와 낙향을 거듭한 것과 대비를 이뤘다.

학문적으로도 성혼과 이이는 다른 길을 걸었다. 성혼은 주자학을 학문의 절대적 기준으로 간주했지만, 이이는 주자학뿐만 아니라 노자나 장자 등 다른 학문도 폭넓게 공부했다. 아울러 성혼은 퇴계의 사상에 무한한 신뢰를 보냈으나, 율곡은 퇴계의 학설과는 다른 독창적인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두 사람은 모두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다. 율곡이 선조에게 민생 안정을 위해 공납제도를 개선하고 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별도의 기구를 설치할 것을 건의했는데, 성혼도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율곡과 우계의 삶과 학문 세계를 비교하며 살펴본 저자는 "두 사람은 각기 독특한 개성과 장점이 있지만, 이를 보완해 갔기에 충돌하지 않고 비슷한 길을 갈 수 있었다"고 강조한다.

그는 다만 후대에 성혼은 소론의 추앙을 더 많이 받고, 이이는 노론의 지지를 더 받았다는 시각은 부정한다. 성혼의 외증손자인 윤증이 소론의 영수가 되기는 했지만, 명분보다 실리를 중시하는 소론의 정책과 성혼의 이념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본질적으로 성혼은 결코 실리주의자가 아니었다"면서 "노론과 소론 모두 성혼과 이이를 동시에 존경했던 것만은 분명하다"고 주장한다.

428쪽. 2만5천원.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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