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금지에 이어 경제 분야까지 확산 분위기
(베이징=연합뉴스) 심재훈 특파원 = 중국이 한반도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대한 반발로 보복 수위를 점차 높여가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이렇다 할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류 연예인 출연 금지 및 한국 드라마 방영 중지에서 시작된 금한령은 이제 한국행 여행객 제한, 한국산 배터리 규제에 이어 한국산 화장품까지 전방위로 넓어지는 분위기다.
10일 중국 소식통 등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올해 한국에 조기 대선이 있고 일부 대선 주자들이 사드 배치를 재검토하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을 노리고 사드 배치를 막기 위해 다각도로 한국을 압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소식통은 "사드 배치에 확고한 입장을 가졌던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정국에 몰리면서 중국으로선 기회가 생겼다고 보고 다양한 방식으로 한국을 압박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중국 외교부가 송영길 의원 등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 7명을 초청해 이례적으로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만나주는 등 환대했다. 이 자리에서 왕이 부장은 "사드 배치를 가속하지 말고 중단해 해결점을 찾자"고 제안했다.
중국 외교부의 싱크탱크 전문가들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세 번이나 반대했기 때문에 중국의 사드 반대 입장은 절대 변할 수 없다는 점을 이들 의원에게 분명히 하기도 했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중국의 사드 공세는 한층 매서워졌다.
중국은 한류 연예인 출연을 금지하는 '금한령'을 가동 중이며 사드 부지를 제공하기로 한 롯데의 중국 사업장에 대한 세무조사에 나서는 등 압박의 전선을 문화에서 경제 영역으로까지 확장했다.
중국공업화신식부는 지난해 12월 29일 '신에너지 자동차 보조금 지급 차량 5차 목록'을 발표했는데 이에 해당하는 493개 차량 모델 중 삼성 SDI와 LG화학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은 없었다. 공업화신식부는 당일 오전 이들 한국 업체의 배터리를 장착한 모델 4개 차종을 포함했다가 오후 들어 이를 제외하고 수정 발표했다.
앞서 삼성SDI와 LG화학은 지난해 6월 제4차 전기차 배터리 모범기준 인증에 신청했다가 탈락한 뒤 5차 심사에 대비해 준비를 해왔다. 그러나 중국 당국이 5차 심사신청을 받지 않으면서 이 부분에서도 별다른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그런 와중에 이들 업체의 배터리를 장착한 중국 자동차마저 보조금 지급 명단에서 제외됨에 따라 사실상 한국 배터리 업체가 중국에서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됐다.
최근 중국 민항국은 춘제(春節·중국의 설) 관광시즌을 앞두고 유커 수송을 위해 제주항공, 아시아나항공, 진에어 등 3개 항공사가 신청한 전세기 운항을 뚜렷한 이유 없이 무더기로 불허했다. 유커 수송을 위해 한국 정부에 전세기 운항을 신청했던 중국 항공사들도 운항을 철회한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 관광업계는 이번 한국행 전세기 운항 불허 조치가 오는 2월까지 이뤄진다는 통보를 받았으며, 3월 이후도 운항 재개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알려졌다.
더욱 심각한 점은 한국행 여행객을 20%가량 줄이라는 지침 또한 오는 4월까지 적용될 것이라는 부분이다.
중국 정부는 저가 여행 근절을 명분으로 지난 11월부터 오는 4월까지 한국행 여행객을 20% 정도 줄이라고 중국 여행사들에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런 해외여행 억제 지침 또한 한국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사드배치에 반발해온 중국이 보복 차원에서 유커의 한국 방문을 제한하려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아울러 중국 질검총국은 새해 들어 처음으로 지난 3일 년 11월 불합격 화장품 명단'을 발표했는데 수입 허가를 받지 못한 제품 28개 중 19개가 애경, 이아소 등 유명 한국산 화장품이었다. 해당 한국산 제품만 총 1만1천272㎏에 달하며 모두 반품 조처됐다.
불합격한 한국산 화장품은 크림, 에센스, 클렌징, 팩, 치약, 목욕 세정제 등 중국에서 잘 팔리는 제품이 거의 다 포함됐으며, 28개 불합격 제품 중 영국산과 태국산 화장품을 빼면 19개 모두 한국산이었다.
관영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지난 7일 '한국이 사드 때문에 화를 자초하고 있다'는 제하의 사평(社評)에서 "한국이 미국 편에 서기로 선택한다면 한국 화장품 때문에 국익을 희생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위협한 바 있다.
문제는 이런 중국의 파상 공세에 우리 정부가 마땅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나마 눈에 띄는 것은 김형진 외교부 차관보가 지난 5일 추궈훙(邱國洪) 주한중국대사를 서울 세종로 외교부 청사로 비공개로 불러 사드와 관련한 중국의 조치 등에 대해 우리 입장을 전달한 점이다.
정부가 이미 중국의 사드 보복조치에 대비해 비록 제한적 수준이지만 선택할 대응방안을 담은 리스트를 준비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중국의 특정 대상을 표적으로 하는 비자발급 제한 조치 등이 현실적 방안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중간 여러 교류프로그램 가운데 그동안 중국 측에 상대적으로 혜택이 많았던 프로그램 중단 등도 검토 대상으로 거론된다.
그러나 이럴 경우 중국과 경제, 문화 관계 면에서 아쉬움이 훨씬 큰 한국이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어 우리 정부가 함부로 내밀기 어려운 카드로 고려된다.
중국 소식통은 "현재 상황에서 한국이 꺼낼 수 있는 대응카드는 많지 않다"면서 "공식 또는 비공식 채널을 통해 사드 문제로 양국 교류에 영향을 주면 중국도 손해라는 점을 지속해서 강조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president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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