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 기술력의 핵심, 20~40대도 이직…'수주절벽' 이어지면 추가 이탈 우려
(거제=연합뉴스) 이경욱 기자 = "그럼 배는 누가 만드나."
공대를 졸업한 올해 30대 초반의 A씨는 지난해말까지만 해도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의 선박 설계 관련 분야에서 일했다.
대우조선에 입사한지 딱 5년이 되던 지난해 12월 초 A씨는 회사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사내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던 그는 회사 측이 입사 만 5년 이상 근속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한다는 소식을 듣고 미련없이 신청했다.
그는 "대우조선이라는 대기업에 합격해 너무 기뻤다"며 "대우조선이 첫 직장이고 정이 무척 든데다 한창 일이 재미있는 시기였지만 희망퇴직 대상이 되고 나니 미래가 너무 불안해서 이직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다른 회사를 알아봤다.
마침 사천에 있는 한 대기업이 설계 관련 전문직을 모집한다는 얘기를 들었고 지원해 합격했다.
그는 지난 2일부터 이 회사에서 일한다.
그와 함께 이 회사로 옮긴 대우조선 전 직원들은 줄잡아 20명이 넘는다.
주로 선박 설계 인력들이다.
조만간 10명 안팎의 직원들이 이 회사로 추가로 옮겨 올 예정이라고 한다.
12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2015년부터 불어 닥친 '조선 불황'으로 거제 대형 조선소들의 수주난이 심화되면서 A씨와 같은 선박 설계 전문 기술인력들도 하나 둘씩 회사를 떠나고 있다.
50대의 나이 든 인력은 물론이고 회사의 허리 역할을 하면서 한창 일할 나이의 20~40대 기술인력들이 조선소를 등지면서 거제 조선업계에서는 요즘 "호황기가 오면 배는 누가 만드나"하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조선소를 떠난 기술인력들은 유사 업종으로 옮겨가거나 공무원 및 공사 입사 준비를 하는 게 보통이라고 조선업계 관계자는 말한다.
일부 장년층의 경우 일본이나 중국의 조선소로 이직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중국과 일본 조선업계도 불황은 마찬가지여서 이직 사례는 흔치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우조선은 근속연수 5년차 이상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지난해 12월 1일부터 9일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회사 측은 몇명이 희망퇴직했는지는 인사 비밀사항이라서 밝힐 수는 없지만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설계 인력이 빠져나갔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대우조선 관계자는 "설계 인력이야말로 조선소의 기술력을 좌우한다"며 "유럽 조선소는 망해도 설계 관련 회사는 살아남아 있는 것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현재 설계 분야 기술직은 2천여명 정도로 예전에 비해 감소 폭은 그리 크지 않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대우조선은 또 지난해 10월 말 10년차 이상 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접수해 1천200명가량을 감축했다.
이 회사는 2015년에도 근속연수 20년차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해 300여명을 내보냈다.
대우조선은 채권단에 제시한 경영합리화 계획에서 올해 안으로 전체 직원 수를 1만명 이하로 낮추겠다고 밝힌 바 있다.
수주가 활기를 띠지 않으면 추가로 구조조정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기술인력 유출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
대우조선 한 직원은 "20~40대 젊은 기술인력들이 하나 둘씩 회사를 등지고 있는 분위기"라며 "새로 직장을 잡은 경우는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공부를 해서 공무원이나 공사에 들어가려고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회사 측이 갑작스럽게 희망퇴직 대상을 5년차 이상으로 통보하면서 젊은 기술인력들이 이직 등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회사를 떠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중공업은 대우조선처럼 대리급 등 젊은 인력에 대한 구조조정은 아직 진행하지 않고 있다.
삼성중은 지난해 사무직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에 나서 1천500여명을 내보낸 이후 추가 구조조정에 나서지 않고 있다.
올들어 처음으로 이달초 1조5천억원 규모의 해양플랜트를 수주하는 등 대우조선보다는 사정이 좋은 편이다.
삼성중의 설계 인력은 3천여명선이다.
삼성중 관계자는 "아직 설계 관련 인력 이직 현상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수주가 어렵다고 해서 한창 일할 기술인력을 마구 내보내게 되면 정작 호황기 때 선박을 제대로, 제 때 만들 수 없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면서 "조선업계는 옥석을 가리는 신중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일본이 조선 불황을 겪었을 때 선박 설계 등 기술인력을 대거 내보낸 뒤 해양플랜트 등 기술력을 확보하지 못해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사례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kyung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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