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안으로 '큰 일 났다' 판단될 때 신고하는 경우 많아
(천안=연합뉴스) 김용윤 기자 = "살처분하면 모두 보상해준다고 하지만 양계시설 전기요금 빼고 사료비 빼고 나면 기초생활비 정도 밖에 남지 않습니다."
주춤하던 조류인플루엔자(AI)가 충남 아산에서 잇따라 발생하면서 예방적 살처분을 포함해 모두 25만여마리의 닭과 오리가 강제 도태되자 가금류 사육농가의 근심이 깊어지고 있다.
AI 바이러스에 감염된 가금류의 살처분이 불가피해 경제적 손실은 물론 입식과 출하 봉쇄로 사육주기를 놓쳐 6개월 정도 손을 놓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16일 전남 해남에서 AI가 발생한 이후 바이러스 차단과 확산 방지를 명분으로 최근까지 닭·오리 등 가금류 3천150여만마리를 살처분했다.
농가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지자 농림축산식품부는 2천660억원을 투입해 피해농가에 대한 보상을 서두르고 있다.
AI가 창궐한 2014∼2015년 669일간 2천381억원이 지급된 것에 비해 훨씬 많은 비용이 지출될 예정이지만 피해 농가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살처분 보상금을 받아봤자 남는 돈이 거의 없다는 계산 때문이다.
양계농민 이모(62·천안시 동남구)씨는 "설 전에 보상비가 나온다고 하는데, 받아봐야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월 200만원 정도 손에 쥘 것"이라며 "이런 것이 바로 방역 당국에 신고를 주저하는 이유"라고 한숨을 쉬었다.
평상시보다 3∼5마리만 더 폐사해도 즉각 신고를 하겠지만, 보상금 자체가 매력이 없어 일부 농가는 며칠 잘 버텨 고비를 넘기는 게 상책이란 생각이다.
달걀값이 워낙 좋아 톡톡히 재미를 볼 수 있고, 삼계탕이나 오리구이·백숙용으로도 소득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토종닭 4만5천마리를 땅에 묻고 입식과 출하에 제동이 걸려 1억원 정도의 피해를 봤다는 이씨는 "결국 육안으로 '큰 일 났다'라고 판단될 때 신고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전남 무안의 한 오리농가가 최근 500마리 폐사 사실을 고의로 늦게 신고했다는 의혹으로 농림부 조사를 받았지만, 가금류 사육 농가들은 지연신고가 낯설지 않다는 입장이다.
아산시 양계농민 김모씨(52)도 AI 감염 의심 닭이나 오리가 많이 나왔을 때 신고해도 수의사 판정을 받아 즉시 살처분해야 하는데, 대부분 2∼3일이 걸리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김씨는 "살처분한 닭과 오리 등을 저장할 FRP탱크 등 자재가 제때 공급되지 않고 있고, 10여년째 30m 길이 비닐을 덮고 가스(CO)를 주입해 안락사시킨 뒤 땅에 묻고 있지만 쉽게 죽지 않은 닭이 많아 여간 고역이 아니다"고 토로했다.
또다른 농민 이모(58·천안시 동남구)씨는 "의심 즉시 바로 신고해도 고병원성이 확진되면 보상금이 20%나 깎인다"며 "대부분 양성으로 나오긴 하지만 일단 버티다가 정밀검사에서 음성으로 나오거나 예방적 살처분을 하면 훨씬 이익이라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2011년 7월 고병원성 AI가 발생한 농가에 대한 보상금 지급 기준을 100%에서 80%로 낮춘 데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는 게 농가의 설명이다.
양계협회 충남도지회 관계자는 "일부 닭·오리 농가가 고의로 지연신고를 하고 있다는 비난이 있지만, 정부도 문제"라며 "AI 발생 농가로 분류되면 사실상 1년 농사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니 그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정부가 오는 4월께 근본적인 AI 대책을 내놓는다고 하지만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천안시 관계자는 "AI가 10여년째 계속되는 데도 예방백신 부족 등 닭·오리 농가의 안전망이 사라지는 것은 큰 문제"라며 "지연신고가 바이러스 확산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인 만큼 방역 당국으로서는 즉각적인 살처분을 독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yy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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