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심리가 초장부터 차질을 빚고 있다. 핵심 증인인 대통령 주변 인물들이 석연치 않은 이유를 내세우며 출석에 불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10일 열린 3차 변론에도 증인으로 채택된 최순실·안종범(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정호성(전 청와대 비서관) 3명이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나오지 않았다. 최 씨는 전날 '본인과 딸(정유라)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고 11일에는 본인 형사재판이 종일 예정돼 있다'면서 불출석 사유서를 헌재에 제출했다. 안 전 수석은 10일 오전 본인 재판의 서류증거 조사와 특검 수사를 이유로 대며 신문을 1주일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 전 비서관은 전날 밤 '본인 형사재판과 관련돼 있고 법원 공판기일도 잡혀 있어 18일 이후 출석하겠다'고 알려왔다고 한다.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는 이번 탄핵심판은 출발부터 순조롭지 못했다. 지난 3일 열린 1차 변론은 증인으로 청구된 박 대통령이 출석하지 않아 9분 만에 싱겁게 끝났다. 5일 2차 변론에는 이재만·안봉근 전 청와대비서관과 최순실 씨의 측근인 윤전추·이영선 전 청와대 행정관이 증인으로 채택됐으나 윤 씨만 출석했다. 홀로 나온 윤 씨도 대부분의 질문에 '모른다' 하거나 '답변할 수 없다'고 억지를 부려 방청객들의 핀잔을 들었다. 자취를 감춘 것으로 보이는 이재만·안봉근 두 사람한테는 헌재의 출석요구서조차 전달되지 못했다. 헌재는 두 사람의 소재 파악을 경찰에 요청했으나 10일 오후 현재 찾지 못하고 있다. 두 사람에 대한 신문 일정이 19일에 다시 잡혔는데 제대로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이들이 의도적으로 증인 출석을 기피하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첫 변론기일에서 '신속 심리' 방침을 천명한 헌재도 강수를 들고 나왔다. 헌재는 예정에 없던 특별기일을 16일 열어 최 씨와 안 전 수석을 분리해 신문하기로 했다.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은 19일 재소환했다. 내주 헌재 심리는 16일, 17일, 19일 세 차례 열리는데 전례 없이 빠른 재판 일정이다. 박 헌재소장은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이 모두 형사재판을 받고 있어 특별기일을 잡을 수밖에 없다"면서 "이들이 다음 기일에도 나오지 않으면 헌재심판규칙에 따라 구인절차를 진행하겠다"고 경고했다. 최 씨 등의 불출석으로 심판 일정에 차질을 빚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최순실 씨 등 핵심 증인들이 헌재 소환에 불응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박영수 특검 수사나 형사재판과의 이해충돌 가능성도 그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하지만 순전히 그렇다고 보기에는 불출석 사유의 설득력이 떨어진다. 공모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로 호흡을 맞추고 있다는 의심을 갖게 한다. 혹시 절차를 지연시켜 시간을 끌려는 생각이라면 포기하는 게 좋을 듯하다. 강제구인에다 특별기일까지 동원한 헌재의 기세를 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격앙돼 있는 국민감정을 계속 해치는 것 같아 걱정스럽기도 하다. 특히 이재만·안봉근 두 사람의 사실상 도피는 너무 모양새가 나쁘다.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사람들이 검거망을 피해 달아난 형사범 흉내를 내서야 되겠는가. 기본적으로 재판은 피고의 방어권을 보장하는 법적 절차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런 재판에 출석을 거부하면 소추 내용을 인정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박 소장은 이날 "변론준비 시간이 부족하다는 사유로 입증이 지연되는 일이 없도록 유념해 달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시간 끌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이다. 특히 대통령 측 증인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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