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리더십] '열린 뒤주·낮은 굴뚝' 구례 운조루 류이주 집안

입력 2017-01-13 07:07   수정 2017-01-13 10:36

[나눔의 리더십] '열린 뒤주·낮은 굴뚝' 구례 운조루 류이주 집안

"서로 나누고 궂은일에 앞장서지 못하는 요즘 세태 안타까워"

(구례=연합뉴스) 장아름 기자 = "나 시집와서도 배고픈 사람들이 대문 앞에 줄을 섰지. 시래깃국을 한 솥 끓여 하루에도 밥을 일곱 번씩 해주는 게 일이었어…."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는 조선 영조 때 무관 류이주가 세운 99칸 고택 운조루(雲鳥樓·중요민속자료 8호)가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운조루 곳곳에는 230년 넘게 이어진 이웃 사랑과 배려의 정신이 스며들어 있다.

류이주 선생과 그 후손들은 형편이 어려운 누구라도 퍼갈 수 있게 헛간에 구멍이 뚫린 뒤주를 놓아두었다.


또 집안 굴뚝을 섬돌 밑으로 내게 했는데, 밥 짓는 연기가 멀리 퍼지지 않게 굴뚝을 낮게 만듦으로써 끼니를 거르는 사람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

선생의 이웃 사랑 정신은 역사의 격동기 속에서도 이어졌다.

열아홉에 시집와 64년째 운조루를 지키고 있는 9대 종부 이길순(83) 할머니는 류이주 종가에 대한 이야기 타래를 풀어나갔다.


◇ 열린 뒤주·낮은 굴뚝에서 엿보이는 '이타심'

류이주는 바깥사랑채와 안채 사이 헛간에 뒤주를 두고 타인능해(他人能解)라고 적어 두었다.

이웃의 가난한 사람들 누구나 먹을 만큼 곡식을 꺼내 가라는 뜻으로, 가져가는 사람이 부끄럽지 않도록 주인과 쉽게 부딪히지 않는 곳에 뒤주를 놔뒀다.

또한 필요한 사람이 조금씩 고루 가져가도록 뒤주 위는 자물쇠로 잠그고 아래에 손바닥만 한 구멍을 내놓았다.

평소 뒤주에 쌀이 똑 떨어져도, 너무 많이 차 있어도 집안에 난리가 났다.

선생의 손자이자 운조루 3대 주인이었던 류억이 어느 연말에 뒤주에 쌀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을 보고는 며느리를 불러 야단친 일화는 지금도 유명하다.

류억은 "어찌 이리 쌀이 많이 남았느냐. 우리 집안이 덕을 베풀지 못했다는 뜻 아니냐"며 "어서 가난한 이에게 이 쌀을 나누어 주어라. 항상 그믐날에는 뒤주에 쌀이 남아 있지 않게 하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운조루의 또 다른 명물은 낮은 굴뚝이다.

사실 굴뚝이 너무 낮으면 연기가 잘 빠져나가지 않아 불 때기가 훨씬 힘들다.

수원화성과 남한산성, 낙안읍성 등 성곽 건축과 궁궐 공사를 담당했던 선생이 이를 몰랐을까.

하지만 류이주는 가난한 백성들을 배려해 밥 짓는 연기가 집 밖으로 퍼지지 않도록 7개의 굴뚝 높이가 지붕의 처마를 넘지 않도록 했다.

수년 전 보수공사 과정에서 큰 사랑채의 굴뚝 위치가 조금 높은 곳으로 바뀌었으나 바뀐 곳도 신발을 벗어놓는 섬돌 밑부분이라고 한다.


◇ 동학과 6·25 전란에도 불타지 않은 부잣집



이길순 할머니가 시집온 시절은 6·25전쟁이 끝난 직후였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됐지만, 지리산 일대에서는 빨치산 토벌이 한창이었다.

이 할머니는 "빨치산이 다 가져가 버린다며 나라에서 양식을 집에 못 두게 하고 먼데다 두고 조금씩 가져다 먹으라 했다"며 "뒤주에 쌀을 채우진 못했지만 늘 밥을 해서 사람들에게 나눠줬다"고 회고했다.

시도 때도 없는 공출로 모두 힘든 시절이었고 가세도 조금씩 기울어 고구마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 날도 많았지만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고봉밥을 해줬다.

밤에는 반란군이, 낮에는 국군이 들이닥쳐 주민들을 못살게 굴던 시절이었다.

이씨의 시아버지이자 8대손인 류증교는 동네 사람들을 지키려고 마을을 찾는 군인이나 순경들을 섭섭지 않게 대접했고, 끼니때가 되면 대문 앞을 서성이던 이웃들에게 밥을 지어줬다.

류증교는 앞서 1944년 운조루에서 일하던 노비들을 모두 해방시켜 양민으로 살도록 하기도 했다.

이런 선행으로 운조루 집안은 동학과 6·25 전란 등 역사의 격동기에도 아무런 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 구름 속 새처럼 숨어서…"가진 것 뽐내지 않고 궂은일 앞장"





이 집의 명칭인 운조루(雲鳥樓)는 원래 큰 사랑채 옆으로 나 있는 누마루의 이름이다.

운조루는 '구름 속의 새처럼 숨어 사는 집' 혹은 '구름 위를 나는 새가 사는 빼어난 집'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도연명의 시 귀거래혜사(歸去來兮辭)의 구절을 따왔다고 한다.

2008년 영화 '님은 먼곳에' 촬영장소로 쓰이면서 누마루에 있던 현판은 안채로 옮겨졌다.

류이주 가문은 첫 번째 뜻에 가까운 삶을 추구한 것으로 보인다.

이 할머니는 "시아버지께서 '권력은 뒤끝이 좋지 않다'며 남편의 형제들에게 관료로 일하지 못하게 하고 교직 등을 권했다"고 떠올렸다.

그 영향이었을까. 류씨 가문에서 일했던 사람이 수년 전 마을을 찾아와 과거 고마움을 갚고 싶다며 비석을 세우고자 했지만, 자녀들은 한사코 사양했다.

어려운 시절에도 가풍을 지키며 함께 나눔의 미덕을 실천해온 9대 종부 이씨는 "나는 어른들이 하시는 대로 시나브로 따라서 했지"라며 덤덤하게 말했다.

이씨는 "예전에 군인들이 이장에게 총을 겨누자 시아버지가 앞을 가로막고 "나를 죽이라"고 해 군인들이 쏘지 않고 간 적이 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그는 "조금 더 가진 사람들이 할 일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진 것을 뽐내지 않고 서로 나누고 궂은일에 앞장서야 하는데…"라며 "그렇지 못한 요즘 세태가 안타깝다"고 말했다.

areu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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