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노키아와 모토로라 휴대전화는 전화를 걸고 받는 통신수단으로서 아무 문제가 없는 전화기였다. 그런데 애플의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이 등장하자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세상에서 사라져 갔다.
테슬라의 전기차는 충전소도 부족하고 안전 문제도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는데도 실물이 나오기도 전에 예약 구매에서 전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켰다.
중국 경제학자 천위안은 신간 '토이리즘'(영인미디어 펴냄)은 애플의 아이폰과 테슬라 전기차의 성공비결로 '토이리즘'(toylism)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그에게 휴대전화는 이제 더는 통신기기가 아니고 자동차는 더는 교통수단이 아니다. 이제 이것들은 이미 장난감이다.
과거에는 기본적인 기능을 충실히 갖추고 여기에 가격까지 저렴한 이른바 '가성비'(가격 대비 좋은 성능)를 갖춘 제품들이 주목받았다. 저자는 이것을 '툴리즘'(toolism)으로 부른다.
그러나 이제 툴리즘의 시대는 가고 '토이리즘'(toylism)의 시대가 왔다고 주장한다. 상품의 기본적인 기능은 물론이고 여기에 사용자의 오감을 자극하고 재미와 멋, 새로움, 트렌드까지 고차원적인 정신적 만족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툴리즘으로는 테슬라 전기차 열풍이 설명되지 않는다. 안전성도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고 충전소도 몇 개 되지 않는다. 실물 자동차를 받으려면 수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경쟁 업체의 전기차를 마다하고 굳이 테슬라의 전기차에 열광하는 것은 테슬라의 전기차가 '장난감' 같기 때문이다.
한때 세계 휴대전화 시장을 주름잡았던 노키아의 몰락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사람들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해서라고 했지만 저자의 설명은 다르다.
노키아는 1996년 이미 '주머니에 넣는 인터넷'이란 휴대전화 상품 전략을 세웠고 2007년에는 애플의 앱스토어보다 1년 빨리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스토어를 선보였다. 터치스크린 역시 이미 2004년 개발했다.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고 있었고 기술력까지 갖췄던 노키아가 애플에 밀린 이유는 툴리즘의 또 다른 특징인 '고효율과 비용절감'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툴리즘의 낡은 사고방식에 갇혀 스마트폰 시장이 크지 않아 큰 비용을 들여봤자 사려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으로 판단한 노키아는 결국 구글에 인수되는 신세가 됐다.
툴리즘과 토이리즘의 관점에서 애플과 삼성전자의 상품 전략을 비교한 대목도 눈에 띈다.
토이리즘에 힘입어 성공을 거뒀지만, 애플은 이후 아이폰에 더는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지 않고 도구화된 상태를 유지했다. 그러나 2011년 9월 삼성이 5.3인치 대형 스크린을 장착한 갤럭시 노트를 공개하자 애플은 시장의 상당 부분을 빼앗겼다.
소형 스크린을 고집하던 애플은 결국 대형 스크린을 장착한 아이폰6와 아이폰6플러스를 내놓았고 다시 한 번 토이리즘의 강자로 부활했다.
삼성은 상황을 바꿔보려 '옥타코어, 천만 화소, 5.7인치 QHD 슈퍼 아몰레드 스크린'등을 강조한 광고를 대대적으로 펼쳤지만,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기능을 강조한 전형적인 '툴리즘' 광고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삼성은 한때 애플을 '습격'해 물리치기까지 했지만 역시 토이리즘의 참뜻을 이해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면서 "만약 그들이 앞으로도 계속 각종 기술변수나 판매가를 따져가며 툴리즘 경쟁에 나선다면 결코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zitro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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