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가 조작' 주장 보수단체 대표 500만원 배상 판결
(서울=연합뉴스) 채새롬 기자 = 2013년 3월 일본의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욱일승천기를 배경으로 일본군 군복을 입고 일본도를 쥐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이 올라왔다.
사진의 우측 상단에는 '대일본제국 육군사범학교'라는 글귀가, 중간에는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라는 한자어와 박정희라는 한글이 병기돼 있었다. 이 사진은 곧바로 한국 인터넷 커뮤니티로 퍼져 누리꾼들의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사진이 엉성하게 조작된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육군사범학교'는 박 전 대통령이 입교했던 일본의 육군사관학교와 만주국 육군군관학교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고, 군복 왼편의 독수리 마크도 일본이 아니라 독일 장교의 군복 표시라는 것이었다.
일본의 유명 아이돌인 '캬리 파뮤파뮤'가 자신의 SNS에 욱일승천기가 연상되는 사진을 게재한 것을 계기로 같은 달 예정됐던 내한공연이 돌연 취소되자 일본의 누리꾼이 이에 항의하는 의미로 조작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일 누리꾼 간 '헤프닝'으로 끝날 뻔한 이 사건은 엉뚱한 곳으로 옮겨붙었다.
한 보수성향 학부모단체 대표 방모씨가 2014년 9월부터 2015년 5월까지 자신의 트위터에 '박원순이 만든 빨갱이 민족문제연구소가 조작한 박정희 대통령 사진으로 선동질을 하고 있다'며 이 사진을 올려 연구소를 비방한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박원순 서울시장과는 관련이 없을 뿐더러 이 사진이 유포돼 논란이 될 때 오히려 사진이 조작된 것이라고 확인해 준 단체였다.
연구소는 "박정희와 관련해 사진을 조작하거나 사실관계를 왜곡 또는 조작하지 않았는데도 피고가 원고를 비방하기 위해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원고의 명예를 침해했다"며 3천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방씨의 소송대리인은 현재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심판 법률대리인 중 한명인 서석구 변호사가 맡았다. 방씨 측은 재판에서 "반(反)대한민국 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에는 명예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논리를 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북부지법 민사14단독 도훈태 판사는 12일 "방씨가 연구소의 명예를 훼손한 점이 인정된다"며 방씨가 500만원을 연구소에 배상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연구소 측은 13일 "연구소가 최근 온갖 유형의 비난과 모략에 시달리고 있다"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인터넷 상에서 무분별하게 자행되고 있는 연구소에 대한 근거 없는 음해가 없어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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