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슬픈 음반가게"…'피습' 터키 한인 레코드숍 결국 폐업

입력 2017-01-16 01:46   수정 2017-01-16 13:56

"가장 슬픈 음반가게"…'피습' 터키 한인 레코드숍 결국 폐업

'록밴드 음악청취 중 피습' 7개월만에…"인연·추억 공간, 악몽의 장소로 변해"

(이스탄불=연합뉴스) 하채림 특파원 = 지난해 록밴드 음악청취 모임 중 터키인들로부터 공격을 당한 한인 레코드숍이 결국 폐업했다.

이스탄불 소재 레코드숍 벨벳인디그라운드는 14일(현지시간) 인디 팝 밴드 '디엑스엑스'(The XX)의 새 앨범을 듣는 모임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피습 사건 후 약 일곱 달 만이다.

업주 이석우(43) 씨는 이날 밤늦게 소셜미디어 계정에 "터키 레코드숍 톱10에는 못 들고 '세상에서 가장 슬픈 레코드숍'이 됐네요. 정말 그런가요?"라고 반문하고는 감사 인사를 남겼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레코드숍'(Der traurigste Plattenladen der Welt)은 팝 음악전문지 롤링스톤스 독일판 작년 10월호에 실린 이 씨의 인터뷰 기사에 쓰인 제목이다. 피습 후 이 씨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가수 이상은의 '외롭고 웃긴 가게' 노래와 글에서 착안한 거로 짐작된다.




벨벳인디그라운드는 작은 갤러리와 공예품점, 개성 있는 카페가 모여 있는 이스탄불 지한기르 지역 언덕길에 2014년 여름 문을 열었다. 언덕 바로 아래 골목엔 노벨문학상 작가 오르한 파무크가 자신의 베스트셀러 제목과 같은 이름으로 세운 '순수 박물관'이 있다.

열 평이 채 안 되는 길쭉한 공간에서 이 씨는 대중성보다는 음악성과 개성이 뚜렷한 가수·밴드의 엘피(LP)를 판매했다.

하루 한 장도 팔리지 않는 날도 더러 있을 정도로 장사 성적은 나빴지만, 날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공유하는 즐거움이 더 컸다.

작년 6월 17일 밤 가게에서 록밴드 라디오헤드의 음악을 듣는 모임을 하던 중 터키인들이 난입해 "라마단 기간에 술을 마신다"며 모임 참석자들을 파이프와 각목으로 폭행하고, 기물을 파손했다.

국내외 언론에 떠들썩하게 보도됐지만, 습격에 가담한 터키인들은 아무도 처벌을 받지 않았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주최 측에도 잘못이 있다며 양비론을 펼쳤다.

이 씨는 "어리석음에 질 수 없다"며 피습 12일 만에 다시 영업을 시작했으나, 결국 트라우마를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했다.

그는 몇 달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그날 밤 일어난 일을 말하는 것이 힘들다"고 롤링스톤스 인터뷰에서 털어놨다.

이 씨는 15일 연합뉴스에 "돈을 벌려고 했다면 이스탄불에서 LP숍을 열지는 않았을 것"이라면서 폐업 이유가 경영난 때문은 아니라고 했다.

주인과 손님의 관계를 넘어 소중한 친구로 지낸 고객들이 피습 사건 이후로 레코드숍에 발을 끊었고, 인연과 추억을 만들어준 공간은 악몽의 장소로 변했다.

이 씨는 '악몽'의 공간을 떠나는 대신 온라인에서 매장을 열 계획이다.

그는 "'그 사건' 이후로 낯선 사람들이 불쑥불쑥 가게로 들어와, 그 얘기를 하곤 한다"면서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는데, 사람들이 흥밋거리로 여기며 끊임없이 기억을 재생하는 것을 견디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tr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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