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째 헌재 위헌 심판 앞두고 하급심서 무죄 판결 잇따라
"세계 유일 분단 상황" 반대…"인권 보호·세계적 추세" 옹호
(전국종합=연합뉴스) 전창해 기자 = 최근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군 입영이나 예비군 훈련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법원의 무죄 판결이 잇따르면서 이를 둘러싼 찬반논쟁이 뜨겁다.
찬성론자들은 인권의식 향상과 세계적인 추세를 고려해 법과 제도에도 전향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반면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특수성, 군 복무자와의 형평성 문제 등을 들어 수용해서는 안 된다는 반대 의견도 상당하다.
◇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 부쩍 늘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 판결은 2004년 5월 21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처음 나왔다.
당시 이 법원의 형사6단독 이정렬 판사(현 법무법인 동안 사무장)는 입영을 거부한 혐의(병역법 위반)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자 오모(당시 21세)씨와 정모(당시 22세)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사는 또 군 복무 이후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돼 예비군 훈련을 거부한 혐의(향토예비군 설치법 위반)로 기소된 황모(당시 32세)씨에 대해서도 잇따라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 판사는 판결문에서 "병역법이나 예비군법은 정당한 사유가 없이 병역을 거부한 자만을 처벌하도록 하고 있는데, 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피고인들은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이 판사는 특히 피고인들에게 진정한 신앙생활을 입증하는 자료 등을 제출하도록 하고, 이를 근거로 판결했다고 부연했다.
하지만 같은 해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병역법 조항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2011년에도 헌재의 판단은 같았다.
이를 근거로 대다수 판사는 그동안의 관행대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복무 기간에 상응하는 1년 6개월 이상의 실형을 선고했다.
그러던 중 2015년 양심적 병역거부로 실형을 선고받은 남성 3명이 헌법소원을 내면서 이 문제는 3번째 헌재 심판대에 올랐다.
이때를 기점으로 사법부 내부의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졌다.
2015년 5월 이후 광주지법 7건, 청주지법 3건, 수원·인천지법 각 2건, 부산·전주지법 각 1건 등 1년 반 새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하급심 무죄 판결이 16건이나 이어졌다.
이 중에는 사상 첫 항소심 무죄 판결(지난해 10월 18일 광주지법)과 2004년 이후 13년 만의 예비군 훈련 거부자 무죄 판결(지난 10일 청주지법)도 있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조만간 있을 헌재의 3번째 심판 결과를 앞두고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사회적 재논의가 필요하다는 판사들의 소신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분단 특수성 고려해야" vs "국제적 표준 위반"
양심적 병영거부에 대한 처벌은 일반 국민 사이에서도 찬반 의견이 극명하게 갈린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주로 우리나라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특수성을 이유로 꼽는다.
정부 역시 북한과 대치 중인 특수한 안보 상황 때문에 병역에 대한 의무 부과가 평등하게 이뤄져야 하고, 이를 회피하는 행위에는 강력한 제재를 가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찬성론자들은 이에 대응해 러시아 남부에 있는 아르메니아 공화국 사례를 제시한다.
1990년대 아제르바이잔과 전쟁을 치른 아르메니아는 현재도 영토분쟁이 계속되고 있지만 2013년 대체 복무제를 도입하고 수감돼 있던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모두 석방했다.
세계적인 추세도 양심적 병역 거부권을 인정하는 분위기로 흘러 징병제를 유지하는 83개국 중 31개국(2012년 기준)이 이를 허용하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변호한 오두진 변호사는 "전 세계에 양심적 병역거부로 수감된 젊은이의 90% 이상이 한국 감옥에 있다"며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국제적 표준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병역의무를 성실히 이행한 대다수 남성의 상대적 박탈감이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가장 큰 반감으로 작용한다.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기사가 보도되면 '군대 갔다 온 난 양심이 없는 것이냐'란 댓글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한 누리꾼은 "일반적인 20대 남성이 제일 걱정하는 게 바로 군대"라며 "아무런 불만 없이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평범한 사람들에게 예우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적어도 박탈감은 느끼게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런 부정적 시각 때문에 찬성론자들 사이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 대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용어를 바꿔 부르자는 의견도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현역 복무자가 존중받고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풍토가 조성돼야 마땅하지만, 우리 사회에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이해와 관용이 자리 잡지 않았다고 해서 이들에 대한 형사 처벌을 용인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소수자 인권 보호는 다수결에 의해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이번 논쟁의 향배를 제시할 헌재의 위헌심판과 관련,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지난해 국정감사 때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을)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박 소장의 임기는 오는 30일까지다.
jeon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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