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 목사 딸 "백악관의 주인이 누구든 사랑과 정의 위해 싸우자"
트럼프와 설전 루이스, 흑인 학생들에 "민주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투표"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장현구 특파원 = 미국 흑인 인권운동가인 마틴 루서 킹 주니어(1929∼1928년) 목사의 탄생을 기념하는 행사가 16일(현지시간) 미국 전역에서 열렸다.
킹 목사의 교회인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의 에베니저 침례교회에선 2천 명 이상의 추모객이 모인 가운데 나흘 후 45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을 성토하는 분위기로 기념행사가 진행됐다고 AP 통신 등 미국 언론이 전했다.
이는 최근 트럼프 당선인과 흑인 민권운동의 살아 있는 전설인 존 루이스(민주·조지아) 하원의원 간의 설전을 바라보는 흑인 사회의 시각이 곱지 않다는 것을 반영한다.
루이스 의원이 러시아의 미국 대통령 선거 개입을 거론하며 "트럼프 당선인을 합법적인 대통령으로 보지 않는다"고 하자 트럼프 당선인은 "(루이스 의원은) 늘 말뿐이고 행동이나 결과는 없다"며 비판해 논란을 불렀다.
이런 분위기에서 진행된 킹 목사 기념행사에서 킹 목사의 딸인 버니스 킹은 미국민들에게 "백악관의 주인이 누구든지 간에 상관없이 사랑과 정의를 향해 계속 싸워나가자"고 격려했다.
그는 트럼프 당선인을 겨냥한 비판을 삼갔지만, 아버지가 생전에 줄곧 강조한 '혼돈이냐 공동체냐'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해 미국이 여전히 선택의 갈림길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결론적으로 트럼프의 시대는 왔다가 간다"면서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아버지가 말한 '사랑받는 공동체'를 만들 길을 찾아야 한다"며 인종 간의 화합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AP 통신은 트럼프 당선인이 대선에서 흑인 유권자의 표를 10%도 얻지 못했으며 흑인 공동체와의 유대 형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소개했다.
라파엘 워녹 애베니저 교회 담임 목사도 설교에서 트럼프 당선인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루이스 의원을 말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미국 역사에서 교훈을 배워야 한다"고 말해 기립박수를 받았다.
워녹 목사는 "루이스 의원은 젊은 시절 흑인의 민권과 투표권 쟁취를 위해 싸우다가 숱하게 체포되고 관계 당국에서 많이 얻어맞았다"면서 "그는 '피의 일요일'의 영웅이자 의회의 양심'"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루이스 의원은 경찰의 폭압적인 진압으로 유혈 사태로 번진 1965년 앨라배마 주 셀마 평화 행진을 주도한 대표적인 인권운동가다.
카심 리드 애틀랜타 시장은 트럼프타워 건설 계획이 좌초된 것을 거론해 두 번째로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는 10년 전 루이스 의원 지역구에서 트럼프 당선인이 트럼프타워 건설 계획을 발표하면서 "애틀랜타는 대단한 일을 했고, 이곳에 와서 기쁘다"고 했지만, (건설 무산으로) 이후에 무엇이 바뀌었는지 모르겠다고 트럼프 당선인을 꼬집었다.
이것이야말로 말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사례가 아니냐는 비유인 셈이다.
민주당 대선 경선에 출마한 무소속 버니 샌더스(버몬트) 상원의원은 에베니저 교회에서 "킹 목사는 인종평등의 옹호자이면서 경제정의의 열렬한 지지자"였다면서 "그는 가난한 사람을 착취하는 베트남 전쟁을 반대했다"고 평가했다.
또 킹 목사가 흑인과 백인 환경미화원의 파업 집회에 참석하려고 테네시 주 멤피스에 갔다가 암살당한 일을 떠올리며 흑인의 민권뿐만 아니라 빈자의 경제 평등을 위해서 헌신했다고 소개했다.
트럼프 당선인과의 설전으로 이날 언론의 조명을 더욱 받은 루이스 의원은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에서 열린 행사에서 흑인 학생을 향해 옳지 않거나 정당하지 못한 것을 보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무언가 말하고 행동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트럼프 당선인을 언급하지 않은 대신 "소중하고 신성한 투표는 민주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비폭력 무기"라면서 학생들에게 적극적인 의사 표출과 정치 참여를 독려했다.
루이스 의원은 "킹 목사가 없었다면 나는 1987년 이래 연방 하원의원으로 일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킹 목사는 우리를 더욱 자유롭게 하고, 우리나라를 더욱 나은 곳으로 인도했다"고 평했다.
이날 오후 뉴욕 트럼프 타워에서 트럼프 당선인과 면담한 킹 목사의 아들인 마틴 루서 킹 3세는 기자들에게 "대화는 건설적이었다"면서 "트럼프 당선인이 모든 이를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고 전했다.
킹 3세는 아버지의 주된 관심사인 빈곤 문제를 트럼프 당선인에게 강조했다면서 앞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트럼프 당선인이 모든 미국인을 대변하는지를 계속 평가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자리는 트럼프 당선인이 킹 목사의 업적을 기리고 흑인 민심을 다독이고자 마련한 것이다.
매해 1월 셋째 월요일인 '마틴 루서 킹 주니어'의 날은 1986년 미국 연방의 공휴일로 지정됐고, 2000년부터 미국 50개 주 전체가 휴일로 기념한다.
멤피스 주민들은 킹 목사의 암살 현장에 세워진 미국 민권 박물관에서 킹 목사를 추모했고,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 주민들은 킹 목사의 발자취를 따라 시내 흑인 인권 기념관 등을 자전거 순례했다.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는 콘서트를 열어 킹 목사의 평등 메시지를 널리 알렸다.
cany9900@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