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곧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할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유럽연합(EU),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독일 등 유럽을 지탱하는 주축을 흔드는 말을 쏟아내자 유럽 내에서 경계감을 넘어 불안과 분노가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 몇 주간 이어져 온 유럽 외교가의 관망세는 미주·유럽 관계의 근간과 가장 전통적이고 친밀한 동맹인 독일을 폄하하는 트럼프의 직설적 발언에 날아가버렸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신문은 트럼프의 최근 발언을 "전후 질서의 기둥을 흔드는 근육 자랑"으로 꼬집고 유럽 외교관들이 바라지 않았던 "2차대전 종전 후 최초로 유럽 분열을 부추기는 미국 대통령과의 대면"이라는 숙제를 떠안았다고 지적했다.
문제의 가장 최근 발언은 이날 영국 더타임스·독일 빌트 인터뷰에서 나왔다.
트럼프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슷하게 본다는 관점을 시사했으며 외국 내정에 발언을 삼가는 외교관례를 어기고 메르켈의 난민 정책을 맹공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도 쓸모없는 기구라고 공격했다.
이에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외교부 장관은 이날 그의 관점이 '놀라움'을 유발한다고 촌평하고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도 이에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노르베르트 뢰트겐 독일 연방하원 외교위원장은 FT에 "그는 전혀 바뀌지 않은 채 선거유세 때 그대로"라며 "나토가 쓸모없고 EU가 쪼개져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에게 서방의 단결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트럼프가 EU 통합을 바라기는커녕 분열을 바란다는 징후는 이미 나왔다.
그가 당선 후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과의 첫 통화에서 "다음으로 EU를 떠날 나라는 어디냐"고 물었다고 FT는 외교관들을 인용해 전한 바 있다.
이런 관점이 정책으로 반영된다면 전후 두 대륙을 결속했던 미국과 유럽 강국들과의 관계는 크게 변화할 것이라고 신문은 지적했다.
한 유럽 고위 외교관은 트럼프의 최근 발언이 너무도 '분명하고 직설적'이라 각국 정부 인사들과 외교관들의 근심이 새롭게 고개를 들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에 맞서 유럽이 더 뭉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뒤따랐다.
장마르크 에로 프랑스 외교부 장관은 "최선의 대응은 유럽의 결속"이라며 "유럽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은 통합하고 EU 안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프란스 팀머만스 EU 집행위 부위원장은 "곧 워싱턴에 있는 모두가 강한 EU에 미국의 전략적 이익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 통합에 반대하는 EU 내 포퓰리즘 정치인들은 당장 쌍수를 들고 트럼프의 이런 말들을 환영했다.
이탈리아 오성운동의 만리오 디 스테파노 외교위 의원은 트럼프의 인터뷰에 대해서 "세상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이고 현상은 모든 면에서 흔들리고 있으며 우리가 그 변화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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