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같은 증언 뒷받침하는 기록·국과수 보고서에도 군 "관련 사실 없다"
(광주=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헬기 사격 가능성을 인정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보고서를 계기로 37년간 외면받은 광주시민의 목소리가 재조명받고 있다.
시민들은 문민정부 이후 본격화한 5·18 진상규명 과정에서 한결같은 증언을 이어갔지만, 군은 아직도 이들의 목소리를 진실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5·18 기념재단은 광주 피해자 322명이 신군부 세력 35명을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 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사건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광주시민의 증언 자료를 17일 공개했다.
자료에 따르면 5·18 당시 해군 3해역사령부 소속 군의관이었던 김모(당시 28세)씨는 1980년 5월 21일 오후 광주 남구 양림동의 선교사촌에서 목격한 일을 1995년 6월 11일 서울지방검찰청 926호 검사실에서 A4용지 6장 분량으로 진술했다.
김씨는 "외국인 선교사가 '어떻게 헬기에서 시민을 향해 사격할 수가 있느냐'고 묻는데 한국민으로서 부끄러웠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김씨는 검찰에서 "조그맣고 동그란" 기체 특징을 묘사해 해당 헬기가 무장형 500MD임을 특정케 했다.
5·18 재단이 공개한 전투병과교육사령부(전교사) '광주소요사태 분석 교훈집'에 따르면 5·18 당시 광주에서는 육군 31항공단 소속 500MD 12대가 투입돼 '무력시위 및 의명 공중화력 지원' 임무를 수행했다. 김씨 증언이 힘을 얻는 대목이다.
검찰이 김씨에게 던진 질문에서도 눈에 띄는 내용이 있다. 상공에서 이뤄진 계엄군의 '사격 자세'다.
조서에는 "같은 날 이광영이라는 증인은 '월산동 로터리를 지나다가 헬기 탑승자가 몸을 밖으로 내밀고 소총 사격을 했다'고 했는데 진술인이 목격한 장면은 어떤가요"라는 담당 검사의 질문이 기록됐다.
이에 김씨는 "제가 목격한 장면도 동체에 부착된 기관총이나 발칸보다는 헬기 탑승자가 지상으로 사격한 것이 아닌가 생각 든다"고 답했다.
최근 국과수는 광주시 의뢰로 광주 금남로 전일빌딩에서 진행한 탄흔 분석의 보고서에서 "탄흔의 크기로 보아 M16 소총일 가능성 크며 M16 탄창을 감안할 때 1인이 탄창을 교환해 사격했거나 2인 이상 다수가 동시에 사격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인용했다.
시민 증언이 군 기록에 이어 과학적 분석 결과와도 맞아떨어진 셈이다.
검찰에 출석한 시민 정모(54)씨도 "그 당시 저공으로 날면서 사격했기 때문에 헬기에 두 사람이 타고 있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며 "사격 섬광이 저의 집쪽을 향했고 기왓장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고 진술했다.
재단은 천주교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헬기 사격 진상규명을 검찰에 촉구하며 제출한 시민 증언 자료를 함께 공개했다.
자료에 등장하는 양모(당시 19세)씨는 "점심을 먹고 사직공원 팔각정에 올랐는데 도청 상공 쪽에서 광주공원 쪽으로 군용헬기가 날고 있었다"며 "어느 순간 드르륵하는 큰 총소리가 3회 연속 났었다"고 구체적인 증언을 남겼다.
국방부는 최근 5·18 당시 헬기사격 여부에 대한 확인을 요구하는 연합뉴스 정보공개 청구에서 "동 기간 내 작전일지를 확인한 결과 관련 사실이 없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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