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이후 버락 오바마처럼 책 읽기와 글쓰기로 자신의 인생과 신념, 세계관을 다듬은 미국 대통령은 없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3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독서가 그의 대통령직 수행과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과 인터뷰해 16일 보도했다.
책은 오바마가 갖가지 정보, 극단적 당쟁으로 시끄럽고 바람 잘 날 없는 백악관에서 보낸 8년 동안 이상과 영감의 원천이었고, 복잡하고 분명치 않게 보이는 인간 사회를 새롭게 보고 해석하는 힘을 줬다.
오바마 대통령은 "일이 급히 돌아가고 숱한 정보가 난무할 때" 독서가 "속도를 늦추고, 관점을 갖고, 다른 입장에서 생각하게 하는 능력을 줬다"고 밝혔다.
그는 "이는 내게 매우 중요했다. 그것이 나를 더 나은 대통령으로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게 균형을 잃지 않게 한 것은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읽었던 책 중 링컨, 마틴 루서 킹 목사, 간디, 넬슨 만델라의 저작은 대통령으로서 매우 외로운 순간, '연대감이 필요할 때' 도움이 됐다고 오바마 대통령은 털어놓았다. 독서를 통해 역사와 시간을 넘어 이들과 교감함으로써 난관을 극복했다는 것이다.
전임 대통령들 전기에서 발견하는 사건 맥락, 상황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유독 힘들다는 고민에 빠지지 않게 해준다"고 밝혔다. 2차 대전을 헤쳐나갔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을 생각하는 것은 특히 유익했다.
오바마가 정치나 역사 서적만 읽는 것은 아니다. 광기, 잔인, 실수, 회복, 품의 등 여러 인간 조건을 폭넓게 전체적으로 보여주는 셰익스피어의 저작은 오바마에게 역사에 대해 긴 안목과 낙관을 갖게 했다. 세계과학소설협회가 매년 선정하는 휴고상 장편소설부문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류츠신(劉慈欣)의 공상과학 소설 '삼체'는 책 읽기의 즐거움뿐 아니라 넓은 시야를 제공했다. 이 작품은 워낙 스케일이 커 백악관에서 벌어지는 일상사를 사소한 일쯤으로 보이게 했다는 것이다.
오바마는 1995년 자신의 저작 '아버지의 꿈'에서 10대 시절부터 독서가 생각을 정리하고, 신념을 정립하는 데 유용했다고 회고했다. 미국에서 흑인으로서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제임스 볼드윈, 랠프 엘리슨, 랭스턴 휴즈, 맬컴 엑스 등의 저작에 빠져들었으며, 대학 마지막 2년은 성 아우구스티누스, 니체, 에머슨 등을 읽으며 깊은 자성과 탐구에 집중했다.
오늘날까지 책 읽기는 오바마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큰딸 말리아에게 전자책 '킨들'을 줬다. 여기에는 '백 년 동안의 고독' '여전사' '황금 노트북' 등 오바마가 딸과 함께 읽고 싶은 책들로 가득하다.
오바마는 거의 매일 자기 전 한 시간가량 책을 읽는다. 장르는 심오한 철학서부터 콜슨 화이트헤드의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등 현대 문학, 고전 소설, 논픽션을 망라한다. 오바마에게 책은 각종 보고서와 정책 문건에 압도당한 두뇌에 '기어'를 바꿔주는 장치다.
링컨처럼 오바마도 스스로 글쓰기를 터득했다. 글쓰기는 오바마에게 자기를 발견하고, 사상과 이상을 세계와 소통하는 방법이었다. 어릴 때부터 일기를 쭉 써왔고, 자신이 겪은 일을 짧은 이야기로 만들었는데, 이는 오바마에게 공감 능력을 키워줬다.
오바마는 8년 전 백악관에 입성할 때 글 쓰는 사람이었다. 며칠 있으면 공적인 생활을 떠나 다시 글 쓰는 사람으로 돌아간다. 백악관에서 썼던 일기를 바탕으로 회고록을 집필할 예정이다.
오바마는 작가적 감수성을 타고났다. 상황에서 동떨어진 관찰자이면서도 자신을 그 상황 속에 두는 능력을 갖췄다. 세밀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는 소설가의 눈과 귀를 가졌으며, 정확하면서도 유려한 목소리로 일상과 서정을 넘나든다.
오바마는 독서 인구 확대에 기여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그는 "세계화, 첨단기술, 이민 등으로 문화 충돌과 양극화가 심각한 오늘날, 사람들을 묶어주는 이야기야말로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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