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향한 번역가의 사랑…박명애 소설 '아홉 대의 노트북'

입력 2017-01-18 09:41  

작가 향한 번역가의 사랑…박명애 소설 '아홉 대의 노트북'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이형우는 '한국의 발자크'로 불리는 작가다. 실존주의자이자 낭만주의·자유주의·회색주의자이기도 하다. 우울한 성정과 서양철학 사상을 바탕으로 '고독한 사랑', '잃어버린 환상' 같은 작품을 썼다.

박명애(56)의 장편소설 '아홉 대의 노트북'(이상북스 펴냄)은 이형우를 향한 번역가의 사랑 이야기가 큰 줄기다. 화자는 이형우의 작품을 10권이나 중국어로 옮겨 출간했지만 잘 팔리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그의 작품을 번역해 오대양육대주에 알릴 목적으로 중국에서 유학했고 지금도 행상인처럼 원고를 짊어지고 출판사를 찾아다닌다.

소설은 두 사람이 네이멍구(內蒙古) 국경지대를 여행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둘은 이동하면서도, 함께 묵으면서도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다. 화자는 이형우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면서 스스로를 괴롭힌다.

사랑의 대상이 작가 이형우인지 그의 작품인지도 뚜렷하지 않다. "이형우는 나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의 책은 나를 이해했다. 책은 온전히 이해해주는 유일한 친구였다. (…) 이형우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을 후려칠 때도 책을 읽었다."

화자와 이형우, 중국의 대표적 지식인 작가 티엔(天)은 묘한 삼각관계를 이룬다. 화자의 외사랑이 주로 내면에 머무는 동안 중국 문단과 출판계 묘사는 날카롭고 비판적이다. 화자는 중국 출판사로부터 "마오쩌둥 주석의 어록에 바탕을 두고 함축성 있게 번역하라"는 주문을 받는다. 정부가 요주의 인물로 경계하는 티엔과 교류한다는 이유로 당국에 납치되는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

도서관에 책을 납품하는 데도 뒷돈이 있어야 한다. "볍씨처럼 가벼운 사랑 얘기"를 원하는 중국 문단의 수준, 또는 민중 의식화에 대한 경계는 또 어떤가. 이형우의 관념적 소설이 주목을 받지 못한 건 당연했다. 베이징 언론출판검열위원회는 '잃어버린 환상'을 외설 서적으로 분류해 퇴짜를 놓는다. 인민들의 의식을 일깨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게다가 한국을 중국의 어느 지방 쯤으로 여기는 뿌리깊은 중화주의도 가세한다.




소설에는 중국에서 오랫동안 번역가로 활동한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녹아 있다. 작가는 1993년 문학사상에 소설을 발표하며 등단했지만 이듬해 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가 번역에 열중했다. 최수철의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사랑', 윤대녕의 '제비를 기르다', 중국 작가 류전윈(劉震雲)의 '객소리 가득 찬 가슴', 모옌(莫言)의 '홍까오량 가족' 등 소설 수십 편을 양국에 소개했다.

한·중 문학 상호 번역이라는 영역을 개척하는 동안 소설가보다는 번역가라는 이름이 자연스럽게 됐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소설은 '아홉 대의 노트북'이 17년 만에 내는 세 번째 작품이다.

작가는 "중국에 살면서 가는 곳마다, 사건을 목격할 때마다 메모한 것을 토대로 이 소설을 썼다"고 말했다. 소설 속 중국 문단의 뒷얘기뿐 아니라 작가를 향한 사랑 역시 자신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했음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이형우와 티엔의 실제 모델이 누구인지 추리해보는 재미도 있다.

작가에게 '한한령'에 대해 물었더니 "어차피 터질 일이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10여 년 전부터 쌓이기 시작한 반한감정에 최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가 도화선이 됐다는 것이다. 작가는 다만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기점으로 중국 당국도 상당히 유연해져 공산당을 직접 비난하거나 독자를 의식화하는 작품이 아니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친구들에게 이번 소설 줄거리를 보여줬더니 '한국에 문제가 더 많은 것 같은데 왜 중국 흉만 보느냐'라고 하더라고요. 중국에 대한 애증으로 읽어주세요." 잠시 귀국한 작가는 임철우의 '아버지의 땅', 이승우의 '오래된 일기'를 번역해 현지 출간을 준비 중이다. 216쪽. 1만3천원.

dad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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