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연합뉴스) 이영희 기자 = 부산시 남구 용당동 산기슭에 있는 한국항만연수원 부산연수원.
동북아시아 환적 거점인 부산항을 비롯해 울산, 경남·북, 전남, 제주지역 항만의 하역작업에 필요한 인력을 길러내는 기관이다.
이 지역 항만에서 일하는 하역근로자 2만명 대부분이 이곳을 거쳐 갔다.
중부권 항만인력 양성은 인천연수원에서 담당한다. 이 지역 하역근로자는 1만여명에 이른다.
1989년에 설립된 항만연수원은 국내 항만들이 현재의 경쟁력을 갖추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이런 중요성이 무색할 만큼 부산연수원의 시설과 각종 장비는 낡고 부족하다.
컨테이너 전용 부두에서 화물을 싣고 내리는 장비인 갠트리크레인이 대표적이다.
1992년에 6억원을 들여 설치한 이 크레인은 컨테이너를 지상에서 17m까지 들어 올려 9m 정도 앞으로 이동할 수 있는 규모이다.
지금은 국내 어느 항만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동안 항만의 크레인들이 선박 대형화에 맞춰 엄청나게 커졌기 때문이다.
현재 부산항에 설치된 갠트리크레인들은 지상 50m까지 컨테이너를 들어 올려 70m 앞으로 이동시킬 수 있다.
훈련장비가 현장과 동떨어지다 보니 교육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선박에 설치해 화물을 싣고 내리는 지브 크레인도 규모가 작고 수도 모자란다.
연수원 관계자는 "교육을 받는 사람들이 장비에 대한 불만을 종종 제기한다"고 말했다.
부산연수원은 궁여지책으로 2013년에 해양수산부 지원을 받아 가상체험장비인 시뮬레이터를 설치했지만, 실제 장비로 훈련할 때보다 효과가 떨어지는 데다 그나마 1대밖에 없어 교육생들이 충분한 실습을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야적장 내에서 컨테이너를 옮기는 트랜스퍼크레인, 리치스태커 등은 아예 없다.
연수원은 항만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훈련 기관을 세우라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생겼지만, 국가가 예산을 지원하지 않고 하역회사가 비용을 부담하는 사단법인 형태로 설립됐다.
선원을 양성하는 해양수산연수원이 국가기관으로 설립돼 관련 예산을 정부에서 지원받는 것과 대조적이다.
항만연수원은 하역회사들에서 화물하역료의 0.5~1%를 교육훈련비 명목으로 받아 운영한다.
하지만 항만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컨테이너부두가 교육훈련비를 내지 않기 때문에 연간 예산이 50여억원에 불과하다.
자체 인건비를 빼고 나면 새로운 장비도입이나 교체는 엄두도 못 내는 실정이다.
컨테이너부두들도 연수원 설립 초기에는 교육훈련비를 부담했지만 1990년대 중반 외국계 자본이 국내 항만 운영권을 장악하면서 납부를 거부했고 이 때문에 지금은 한곳도 내지 않는다.
부산연수원은 광양항에서 쓰지 않는 갠트리크레인을 무상으로 받아 기존 크레인을 대체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해체해서 옮기는데 드는 10억원을 마련할 길이 없고 설치 장소도 마땅치 않아 포기했다.
최근에는 항만 내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교육 수요도 급증하고 있지만, 연수원의 시설과 인력이 뒤따르지 못한다.
인천연수원도 시설과 장비 면에서 부산연수원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관계자는 말했다.
국가 물류망의 근간을 이루는 항만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부두 등의 인프라 확대 못지않게 인력의 전문성과 숙련도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
따라서 선박 대형화와 항만 발전에 걸맞게 항만인력 양성 시설과 장비를 개선하는 일이 시급해졌다.
부산연수원의 경우 부산신항 배후에 지금보다 넓은 면적에 최신 장비를 갖춘 새로운 시설을 마련하는 구상을 하고 있지만 자체 예산으로는 어림도 없어 부산항만공사의 도움을 바라고 있다.
김상식 부산항운노조 위원장을 비롯한 항만 종사자들은 "정부와 항만공사가 항만경쟁력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인력 교육훈련에 관심을 쏟고 재정지원도 해야 하며, 혜택을 보는 컨테이너터미널도 이에 동참해야 한다"고 19일 말했다.
lyh950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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