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뇌물 시험대서 '제동'…다른 대기업 수사 차질 오나
(서울=연합뉴스) 최송아 이보배 기자 =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파죽지세'가 최대 고비 앞에서 잠시 꺾였다.
'재벌 총수 1호'로 청구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19일 법원에서 기각돼 수사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이 부회장 구속을 박근혜 대통령 직접 수사로 향하는 '급행 열차'로 삼을 계획이었지만, 수사 계획과 전략에 수정이 필요할 전망이다.
특검은 박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61·구속기소)씨, 삼성의 '거래' 의혹을 줄곧 의심하며 수사를 이어왔다.
삼성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숙원 사업이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성사하고자 국민연금의 찬성표가 필요했고, 성사되도록 힘을 써 준 박 대통령이 최씨를 통해 그 대가를 받았다는 게 특검의 '큰 그림'이었다.
수사가 여러 갈래로 진행되고 있지만,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과 국내 1위 기업인 삼성그룹을 동시에 겨냥하는 이 부분이 특검 전체의 성패를 좌우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우세했다.
이 때문에 특검도 이 부회장을 이달 12일 피의자로 불러 다음날 오전까지 22시간 '밤샘 조사'를 벌이는 등 관련 수사에 공을 들였다.
두 회사 합병이 잘 이뤄지도록 대통령이 챙긴 정황은 앞선 특검 수사에서 확인됐다. 국민연금 측에 찬성하도록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범죄 사실엔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고 명시됐다.
삼성이 최씨 측을 지원한 것도 드러났다. 최씨 모녀에게 직접 지원했거나 약속한 금액만 210억원이 넘고, 미르·K스포츠 재단, 최씨와 조카 장시호(38·구속기소)씨가 지배한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넘어간 돈이 220억원가량이다.
이런 금품이 '뇌물'이 되려면 결국 두 사안 사이의 상관관계, 대가성이 규명될지가 핵심이었다.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도 이 부분 공방이 가장 치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이 이 부회장 쪽의 손을 들어주면서 특검이 뇌물공여 혐의와 관련해 무리하게 법리를 적용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수사 동력 약화로 이어질 우려가 있는 부분이다.
재단에 낸 출연금이 '강요 행위'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삼성을 비롯한 기업들의 논리에도 힘이 실리면서 삼성을 시작으로 다른 대기업으로 수사를 확대하려던 특검팀의 계획이 속도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 측이 영장실질심사에서 경제 파장이나 방어권 보장, 증거인멸 우려가 없는 점 등을 고려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도 전해져 향후 수사가 이런 부분에서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특검팀으로서는 이 부회장 영장 기각에서 확인된 미비점을 보완해 동력을 되찾고자 관련 수사에 시간과 역량을 더 투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뇌물을 준 혐의를 받는 기업인이 먼저 구속되면 박 대통령 측을 압박하는 효과도 동시에 누릴 수 있었으나 특검 수사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던 대통령 측의 부담을 도리어 덜어주게 됐다는 점도 특검팀 입장에선 아쉬운 부분이다.
박 대통령은 연초 기자 간담회에서 뇌물죄 의혹을 "완전히 엮은 것"으로 주장하는가 하면, 변호인을 통해 특검 수사가 중립적이지 못하다며 문제 삼는 등 특검 수사에 비판적인 입장을 드러내 왔다.
다만 보강 수사 이후 특검이 이 부회장의 영장을 재청구하거나 불구속 기소해 재판에서 유·무죄를 다툴 기회가 남아있기 때문에 증거 보강과 법리 검토를 통해 '반전'을 끌어낼 가능성도 충분하다.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전폭적인 여론의 지지 속에 사상 최대 규모로 꾸려진 특검팀이 처음 찾아온 큰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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