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산업팀 = 박영수 특검팀이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에게 뇌물공여 혐의 등을 적용해 청구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19일 기각한 사건을 계기로 재계와 법조계 등에서는 특검 수사 방향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지 않으냐는 지적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박근혜 정부 아래에서 행해진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의혹을 규명하는 수사가 대기업 쪽으로 편중돼 진행되는 모양새를 띠다 보니 마치 특검이 재벌 사정에 나선 듯하다는 재계 측의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재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박영수 특검팀은 지난달 21일 대치동 D빌딩에서 현판식을 하기가 무섭게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영본부 등 10여 곳에 대한 동시다발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출범 첫날부터 삼성을 겨냥한 압수수색을 벌인 것이다.
이날 특검팀 대변인인 이규철 특검보는 "삼성의 제3자 뇌물공여와 국민연금의 삼성물산[028260]-제일모직 합병 찬성 사이의 대가 관계를 규명하기 위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삼성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 최지성 실장(부회장), 장충기 차장(사장), 승마협회장을 맡은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 등이 줄줄이 특검팀 사무실에 불려갔고, 지난 12일에는 이재용 부회장이 소환돼 22시간 동안 이어진 밤샘조사를 받았다.
특검팀이 이 부회장을 대상으로 청구한 구속영장은 이날 새벽 기각됐지만, 삼성은 그동안의 수사로 큰 동요를 겪었다. 지난달에 이미 단행됐어야 할 사장단 인사는 무기한 연기되는 등 연말 연초의 사업 일정이 흐트러졌을 뿐 아니라 삼성전자가 9조 원을 들여 사들이겠다고 밝힌 미국 전장기업 하만의 인수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연간 매출 300조 원이 넘는 삼성그룹의 총수 이 부회장이 특검팀 사무실과 법원, 구치소를 굳은 표정으로 오가는 모습은 외신을 통해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보도됐다.
거칠 것 없이 질주하던 특검의 수사는 법원이 '뇌물 범죄의 요건이 되는 대가 관계와 부정한 청탁 등에 대한 특검팀의 소명이 부족하다'는 취지로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재계는 특검이 미르·K스포츠 재단에 출연한 모든 기업을 뇌물죄로 몰아가려고 했던 프레임이 깨진 것이라며 "그동안 특검이 너무 무리했다"고 주장했다.
10대 그룹의 한 관계자는 "특검의 무리한 수사 때문에 지금 국민은 수사의 목적이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이 아니라 기업 총수들을 잡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국정농단이 수사의 중심인데 오히려 재계를 얽어매면서 본말이 전도된 듯 하다"고 말했다.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특검이 그동안 객관적이고 엄정한 법리보다는 여론에 편승해 보여주기 식 수사를 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지금 미국과 유럽 모두 자국 기업 우선주의, 보호주의로 가고 있는데 우리는 자국 기업들을 멸시하고 천시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며 "아무것도 못 하게 해놓고 이 와중에 일자리는 만들라고 하면 대체 기업들은 어느 장단에 춤춰야 하는가 싶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특검팀은 이 부회장의 구속 무산에도 SK와 롯데, CJ 등 다른 대기업으로 수사를 확대할 뜻을 내비쳤다.
법조계 관계자는 "특검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이나 이화여대 부정입학 의혹 수사에서 성과를 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지금쯤 수사 목적을 되돌아보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freemo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