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저널·비늘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 눈의 황홀 = 200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작가 명지현(51)의 두 번째 소설집.
"어머니, 어머니. 가품을 진품으로 만들려면 제 목숨을 바쳐야 하지요? 꽃을 만드는 이들이 자결했던 이유는 하나, 범부가 볼 수 없는 것을 얻기 위함이지요." 표제작 '눈의 황홀'은 화장(花匠), 즉 꽃을 만드는 장인의 이야기다.
할머니·어머니·손녀로 이어지는 화장 삼대는 저승에나 가야 본다는 '천상의 꽃'을 위해 서로의 목을 조르는 데까지 나아간다. 세상에 없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맹목에 가까운 욕망을 다룬 일종의 예술가 소설이다.
작가는 유기된 아이('실꾸리')와 흙과 실리콘 뼈로 만들어진 인간('흙, 일곱 마리')처럼 소외된 존재를 주체로 자주 등장시킨다. '구두'에서는 예정에 없던 임신을 한 화자의 선택을 통해 낙태 혹은 '임신중단'이라는 논쟁적 소재를 다룬다.
문학과지성사. 296쪽. 1만2천원.
▲ 동방의 항구들 = 레바논 태생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작가 아민 말루프(68)의 장편소설.
작가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주인공 오시안의 일생을 서술하며 민족과 종교·화해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레바논에서 자랐고 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로 유학한 오스만은 나치 독일에 맞선 레지스탕스 운동에 가담한다. 그리고 유대인 여성 클라라와 사랑에 빠진다. '히틀러가 증오했던 두 민족', 유대인과 아랍인의 분쟁이 격화한 시기 두 사람의 사랑과 좌절은 20세기 중동 현대사의 굴곡을 상징한다.
작가는 남부 레바논을 배경으로 한 소설 '타니오의 바위'로 1993년 프랑스의 권위있는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2011년에는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자리를 이어받아 프랑스 학술원인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 됐다. 이슬람·아랍권 전문 출판사 '훗'의 동방문학총서 첫 번째 책.
훗. 박선주 옮김. 308쪽. 1만2천원.
▲ 미드나잇 저널 = 일본 주오신문 사회부 기자 세키구치 고타로는 아동 유괴 사건을 취재하다가 치명적 오보를 낸다. 살해되지도 않은 아이의 시신이 발견됐다고 쓴 기사 때문에 사이타마현 지국으로 좌천당한다.
7년 뒤 사이타마현에서 비슷한 수법의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범인은 이미 사형됐지만 오보 사건 탓에 공범이 더 있는지 취재를 마무리하지 못한 터였다. 오보를 만회하고 특종을 잡을 절호의 기회다.
산케이신문 기자 출신인 작가 혼조 마사토(52)의 추리소설. 진실을 파헤치려는 기자의 사명감, 수사에 방해받지 않기 위해 거짓 정보까지 흘리는 경찰과 수싸움, 대형사건 앞에서 자존심을 건 신문사들의 취재경쟁을 실감나게 그린다.
"하루 정도 빨리 보도하는 데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빨리 기사화하지 않으면 매스컴은 뭐든 공식 발표를 기다린다고. 그거야말로 권력에 끌려가는 거지. 아무래도 상관없는 허접한 정보만 전하고 불리한 건 숨기는 권력 말이야."
예문아카이브. 김난주 옮김. 552쪽. 1만5천원.
▲ 비늘 = 2004년 재외동포문학상 시 부문에서 당선되며 등단한 작가 임재희(63)의 두 번째 장편소설. 전작 '당신의 파라다이스'와 마찬가지로 작가가 이민생활을 한 미국 하와이가 배경이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소설이라니. 사랑이라니. 각자 살자." 작가 재경의 아내이자 문우인 영조는 어느날 소장한 책을 모두 팔고 헤어지자고 말한다. 재경은 자신을 소설가의 길로 들어서게 한 '비늘'의 작가 한동수를 찾아 떠난다.
한동수는 등단 첫 해 여러 권위있는 문학상에 최연소 후보로 오르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지만 지금은 하와이의 노인전용 아파트에서 어머니와 함께 산다. 재경은 글 쓰기에서 멀어진 한동수, 한때 소설가였다가 피해망상증 때문에 더 이상 쓰지 못하는 노숙자 피터를 통해 자신의 글쓰기를 돌아본다. 작가 김이정은 추천사에서 "소설과 소설을 쓰는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긴 작품"이라고 말했다.
나무옆의자. 256쪽. 1만3천원.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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