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당국이 최초 신고 묵살…시간 지체돼 골든타임 놓쳐"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최악의 눈사태가 이탈리아 중부의 작은 산간 마을 호텔을 덮치며 약 30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이탈리아 당국이 늑장대응 논란에 휘말렸다.
이탈리아 구조 당국은 이탈리아 중부 아브루초 주 페스카라 현의 파린돌라에 있는 호텔 '리고피아노'에 거대한 눈사태가 덮쳐 투숙객과 호텔 직원 등 30명이 실종됐다고 19일 밝히고, 구조 작업을 진행 중이다.
최근 며칠 간 최대 2m의 폭설이 쌓인 이 지역에 전날 규모 5.2∼5.7의 지진이 4차례 잇따른 탓에 유발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번 눈사태의 정확한 발생 시점은 아직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당국이 사고를 처음 접수한 때부터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시간이 너무 지체돼 '골든 타임'을 놓쳤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논란이 일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아브루초 주 페스카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퀸티노 마르첼로는 자신의 식당에서 일하는 요리사 잠피에로 파로테로부터 호텔에 눈사태가 났으니 구조해달라는 다급한 전화가 걸려온 시각이 18일 오후 5시30분이라고 밝혔다.
아내, 두 어린 자녀과 함께 휴가차 이 호텔에 투숙했다가 또 다른 투숙객 1명과 함께 가까스로 구조된 파로테로는 당시 전화에서 "호텔이 눈에 파묻혔고, 아내와 아이들이 빠져나오지 못했다"며 "도와달라"는 말을 되풀이한 것으로 전해졌다.
긴급 전화를 받은 마르첼로는 "곧바로 페스카라 현 경찰에 전화해 이 사실을 알렸으나 경찰은 내 말을 믿지 않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경찰이 눈사태 발생 몇 시간 전 호텔측과 통화했을 때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그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는 것이다.
마르첼로는 자신의 말을 믿으라고 거듭 주장하는 한편 다른 긴급 번호로 계속 전화를 걸었고, 최초 신고 시점부터 약 2시간이 지난 저녁 8시가 돼서야 겨우 구조대가 조직됐다고 말했다.
이 일대의 폭설로 호텔로 접근하는 길이 끊긴 탓에 출동에 나선 산악 경찰은 스키를 타고 눈밭을 헤친 끝에 19일 새벽 4시에야 비로소 현장에 도착했다고 이탈리아 언론은 보도했다.
추위에 떨며 구조를 기다리던 요리사 파로테, 호텔에서 빠져나온 직후 휴대전화 메시지로 구조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 또 다른 투숙객 파비오 살체타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으나, 경찰이 눈과 붕괴된 건물 잔해로 뒤범벅이 된 호텔에 접근했을 때에는 아무런 인기척도 나지 않았다.
구조 당국은 본격적으로 날이 밝은 오전 9시가 넘어서야 헬리콥터로 구조대를 투입해 본격적인 구조 작업에 나섰고, 눈길에 중장비의 공수가 막히며 현재까지 시신 3구를 수습하는 데 그쳤다.
비난 여론이 비등하자 파브리치오 쿠르치오 시민보호청장은 "우리는 지진, 이례적인 폭설이라는 두 가지 큰 악재에 동시에 직면해있다"며 "지진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피신해야 하지만, 폭설 지역에서는 안전이 보장될 경우에는 집에 머물러 있는 게 좋다. 그런데, 이 두 경우가 한꺼번에 겹치며 문제가 극도로 복잡해지고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한편, 파올로 젠틸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비난 여론을 의식한 듯 이날 지진 지역 구조 당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지진과 폭설로 고립된 주민들에게 닿기 위한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며 "민간인과 군대를 막론하고 가용할 수 있는 모든 기관을 동원해 이 위기를 극복하자"고 강조했다.
아브루초를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 중부 산간 지역은 최장 나흘째 폭설이 쏟아지며 약 10만 가구의 전기가 끊기고, 산골 마을 곳곳이 고립돼 주민들이 큰 고통을 받고 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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