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개헌발의선 확보·장기집권 발판 마련…개헌의 길 일단 열어
'헌법9조 개정·국방군 창설' 지향…野·시민단체 반발·여론 변수
(도쿄=연합뉴스) 최이락 특파원 =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0일 국회 새해 시정연설을 통해 헌법 개정 추진 의사를 공식화했다.
그는 올해가 일본 헌법 시행 70년이라는 하나의 단락을 맞이했다면서 앞으로 맞이할 70년이라는 새로운 단락에 어울리는 헌법이 필요한 만큼 국회의원들에게 개헌안 마련의 책임을 다하라고 촉구했다.
아베 총리는 연설에서 '새출발, '새로운 나라 만들기' 등의 표현을 동원하며 개헌의 당위성을 포장했지만 일본 안팎에서는 그가 2012년 12월 취임 이후 보여온 '극우본색' 행보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 2012년 취임 후 '극우본색' 노골화…안보관련법 개정이 대표적
대표적인 것이 2015년 9월 국회에서 강행처리된 뒤 지난해 3월 시행된 안보관련법이다. 이 법은 자위대의 무력행사의 길을 열어놓으면서 일본내 시민단체들로부터도 '전쟁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는 물론 일본의 야권과 시민단체들 사이에서도 아베 총리의 이번 개헌 추진 공식화에 대해서는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는 아베 총리가 현행 일본 평화 헌법의 핵심인 9조 개정에 상당히 집착하는 것과 무관치 않다.
아베 총리는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2012년 자민당이 마련한 개헌안 초안을 언급했다. 그는 "자민당원으로서 개헌에 대해 당과 생각이 다르지 않다"고 했다.
문제는 이 초안이 과거 군국주의로의 회귀를 뼈대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초안은 외국과의 분쟁 해결 수단으로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헌법 9조를 개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개편해 정식 군대화해 외국과의 전쟁에 나설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현재 '국가의 상징'으로 규정한 일왕도 '국가 원수'로 바꿔 놓았다. 과거 2차대전을 일으킬 당시의 일본을 연상케 하는 내용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아베 총리의 개헌 구상 공식화가 과거와는 다른 무게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지난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과 연립 공명당을 합쳐 과반수를 얻으며 중·참의원에서 개헌 발의선(각각 의석의 3분의 2 이상)을 확보한 만큼 종전과 달리 개헌 작업이 현실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국회 발의선 확보했지만 야당·시민단체 반발이 변수
다만 아베 총리의 국회에 대한 개헌 압박이 곧바로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현 단계에서는 미지수다.
지난해에도 아베는 여러차례 "국회에서 여야가 바람직한 헌법의 방향을 논의해 달라"고 요구했고, 중의원과 참의원에 설치된 헌법심사회도 가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민진당 등 야권이 아베 총리의 의도가 헌법 9조의 개정에 있다며 큰 틀에서 반대 입장을 견지해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태다.
또 당장 아베 총리와 여권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한 것도 개헌 추진에 올인하기 어려운 요인으로 지적된다.
이날 출범하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계 강화가 당정의 최대 과제다. 아베 총리도 이날 연설에서 조속한 미일 정상회담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아울러 지난해 12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두차례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쿠릴 4개섬(일본명 북방영토) 인도 협상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도 아베 총리의 행동반경을 좁힐 것으로 보인다.
내부적으로는 조기 퇴진 의사를 표명한 아키히토(明仁) 일왕을 위한 특별법 마련 등의 선결 과제가 적지 않다.
이에 따라 아베 총리의 이날 국회에 대한 개헌안 마련 공식 요청에도 불구하고 실제 정치권에서 상반기 중에는 논의가 본격화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또 개헌논의가 공식화된다고 해도 야당은 물론 시민단체 등에서 "일본을 전쟁국가로 만들려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9조 개정은 쉽지 않아 보인다.
여론도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지지통신이 지난 6~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9.5%가 '개헌이 우선해서 다뤄야 할 정치과제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반면 '우선해야 한다'는 응답은 36.5%에 그쳤다.
◇ 쉬운 항목 개헌 후 헌법9조 개정하는 '2단계 개헌론' 주목
이에 따라 여권에서 제기됐던 된 2단계 개헌론이 여전히 유력한 카드로 거론되고 있다.
2단계 개헌론은 민진당 등 야당과 시민단체에서 강하게 반대하는 헌법 9조 개정은 뒤로 미루고 일단 긴급사태 조항 등 여야 간 이견이 적은 항목을 개헌하자는 것이다.
긴급사태는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 내란 등에 의한 사회질서 혼란, 지진 등에 의한 대규모 자연재해 등을 말한다.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총리 권한을 한층 강화하고 내각이 법률과 같은 효력을 갖는 정령(政令, 법률의 하위 개념인 명령)을 만들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가 이런 내용을 중심으로 개헌 분위기를 띄운 뒤 추후 여론 추이를 봐 가며 헌법9조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의 임기도 개헌과 연계돼 있다. 자민당에서는 2018년 9월이 만료시점인 그의 임기를 3년 연장할 수 있도록 한 규정(당 총재 연임 제한→3연임 가능)이 오는 3월 15일 당대회에서 개정될 예정이다.
현재 당 장악력으로 봤을 때 이변이 없는 한 그는 차기 총재선거에서 승리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그는 2021년 9월까지 임기를 늘리며 개헌을 추진할 시간을 벌 수 있다.
정치권에서는 아베 총리가 미국의 트럼프 정권과의 공고한 동맹을 재확인하고 러시아와도 북방영토 문제에 대해 어느정도 진전을 거둔 뒤 올 가을께 중의원 해산 및 총선을 통해 개헌 분위기를 고조시킬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이런 구상이 구체화되려면 여론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베 정권이 지난 연말부터 부산 소녀상 설치 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강공 일변도로 나서는 것이 눈에 띈다.
실제 지난 연말 한때 추락했던 아베 내각 지지율은 새해들어 부산 소녀상 설치를 둘러싼 한일간 갈등 이후 반등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아사히신문이 지난 14~15일 유권자 1천97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 지지율은 54%로 한달전에 비해 4% 포인트 올랐다. 일부 조사에는 한달 전에 비해 6% 포인트 오른 67%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아베 총리가 개헌 추진 과정에서 지지율 하락이나 정체가 이어지면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과의 역사나 영토 분쟁을 정략적으로도 이용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해서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choina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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