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라 표현 서툰 피해자 고씨 '침통'…어머니 "나쁜 사람들"
주민들 "청춘 송두리째 빼앗아 강제노역…가해자 처벌 솜방망이"
(청주=연합뉴스) 이승민 기자 = 20일 청주 '축사노예' 사건 가해 농장주 부부에 대한 법원 판결 소식을 접한 피해자 고모(48)씨 마을 주민들은 19년 고통받은 것에 비해 형량이 가볍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피해자 고씨가 사는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마을 주민들은 이날 오전 마을회관에 모여 법원이 가해 농장주 부인 오모(63)씨에게만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남편 김모(69)에게는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부인 오씨에게만 실형이 선고됐다는 소식에 이웃 주민 A(40·여)씨는 "청춘을 빼앗긴 채 20년 가까이 노예 같은 생활을 했는데 가해자에게 징역 3년은 너무 짧은 것 같다"면서 "자기 자식이라면 그렇게 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씨는 28살 때 소 중개인에 손에 끌려가 가족과 생이별한 채 소를 기르는 축사에서 19년 동안 소똥 냄새가 진동하는 쪽방에서 생활하며 강제 노역했다.
주민 B(72·여)씨는 "지적으로 조금 모자라기는 해도 착한 애를 데려다 김치와 밥만 주고 가축보다 못한 생활을 하게 한 것을 생각하면 이 정도 벌은 절대 무거운 것이 아니다"고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주민들 사이에 끼어 통마늘을 손질하던, 지적장애가 있는 고씨의 어머니(78)는 심경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채 "나쁜 사람들이다", "말할 수 없이 속상하다"는 말만 수차례 반복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집에서 판결 소식을 접한 피해자 고씨 역시 어두운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입을 굳게 다물었다. 지적장애 2급인 고씨는 어머니보다도 자신의 감정이나 의사를 말로 표현하는데 서툴다.
다만 어머니, 누나와 생이별을 했다가 19년 만에 재회한 이후 밝은 모습을 되찾고 소일거리를 하며 지내온 그의 머릿속에 고통스러웠던 축사 생활이 다시 떠오르는 듯 보였다.
지적장애가 있는 고씨의 누나(52)는 "(가해자가) 감옥에서 1년을 살든, 3년을 살든 그런 건 잘 모르겠다"면서 "다시는 그 일을 떠올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청주지방법원은 이날 고씨에게 19년간 무임금 강제노역을 시키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며 폭행한 혐의(노동력 착취 유인 등)로 기소된 오씨에게 징역 3년을, 남편 김씨는 상대적으로 죄가 가볍다며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피해자 고씨는 1997년 여름 천안 양돈농장에서 일하다 행방불명된 뒤 소 중개인의 손에 이끌려 청주시 오창읍에 있는 김씨의 농장으로 왔다.
이곳에서 그는 19년간 축사 창고에 딸린 쪽방에서 생활하며 소 40∼100여마리를 관리하거나 밭일을 하는 등 무임금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지난해 7월 1일 밤 축사를 뛰쳐나온 고씨는 경찰에 발견돼 가족과 극적으로 상봉했다.
logo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