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에 '자유'(liberty)·'평화'(peace) 빠지고 '살육'(carnage) 등장
뉴욕타임스 "임기를 여는 첫 순간은 실망을 넘어섰다"
월스트리트저널 "후보 때와는 다를 것이라는 생각 뿌리뽑았다"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 미국과 해외 주요언론은 20일(현지시간)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의 취임사가 화합보다는 분열을 강조했다며 일제히 혹평을 쏟아냈다.
특히 언론들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이번 연설이 트럼프가 대선 기간 되풀이했던 분열적인 수사(修辭)와 별반 다르지 않으며 희망 대신 종말론적 디스토피아의 잘못된 그림을 그렸다면서 트럼프 집권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먼저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새로운 대통령의 취임사는 '분명한 실망'(sharp disappointment)으로 밖에는 표현될 수 없다"고 비난했다.
WP는 "트럼프는 미국을 워싱턴 정계와 욕심 많은 외국에 의해 희생된 빈곤한 우범 지역으로 묘사하며 잘못된 그림을 그렸다"며 "이는 그의 정치적 이익에 부합할지 몰라도 나라의 안정과 통합에는 기여하지 못한다"고 공격했다.
또 전임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자주 등장했던 '자유'(liberty)나 '정의'(justice), '평화'(peace)와 같은 단어들이 이번 취임사에는 빠졌고, 그 대신 '살육'(carnage)이나 '빼앗긴'(ripped) 같은 단어를 들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WP는 트럼프는 참여와 상호의존과 같은 개념을 조롱하고, 이기는 것만을 유일한 목표로 잡았다며 모든 국가가 자국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는 제로섬을 지지했다고 덧붙였다.
뉴욕타임스(NYT)도 "트럼프의 취임사가 품위가 없었을뿐더러 충격적일 정도로 역사에 무관심한 비전을 드러냈다"며 "그의 임기에 희망보다는 의구심을 갖게 했다"고 일침을 가했다.
NYT는 트럼프는 미국의 이상에서 최고의 것들을 불러모으기보다는 군사적 지배를 강화하고, 중산층에게 부를 돌려주는 현실성 없는 공상과 같은 목표를 제기했다고 비판했다.
신문은 "트럼프에 대한 기대가 애초 높지 않았지만, 트럼프 임기를 여는 첫 순간은 실망을 넘어섰다"며 "그의 연설은 억울해하고, 불안해하는 백인들에 집중하는 데에서 나아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 미국의 국가적 쇠퇴를 "미국인들에 대한 살육"으로 묘사하며 이를 되돌리겠다고 약속했다고 일침을 놓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취임사라기보다는 집회에서 나올 연설이었다"고 깎아내린 뒤 "트럼프가 후보 시절과는 다르게 정부를 이끌 것이라는 생각을 뿌리뽑았다"고 혹평했다.
이 신문은 또 트럼프가 기존 정치권을 공격한 것을 언급하면서 "자신이 이끌고 나가야 할 정치시스템을 공격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이후 가장 정치적으로 독립된 대통령, 새로운 유형의 대통령이 될 것을 시사했다"고 해석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도 트럼프가 대선후보였을 때처럼 터무니없는 단순화 발언이나 지키기 불가능한 약속을 했다고 비난했다.
LAT는 트럼프의 분열적이었던 대선 캠페인 때문에 불안해하는 미국인들을 안심시킬만한 말이 나오길 기대했지만, 취임사는 그의 대선 기간 수사가 재탕됐다고 지적했다.
또 이번 연설은 사실상 트럼프의 상투적 문구들을 모아놓은 '베스트 음반'(Greatest Hits)와 같다며 이 음반은 "미국 우선주의"에서 시작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로 마무리됐다고 전했다.
아울러 "트럼프의 취임사에서 빠진 것은 그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들에 대한 인식이었다"며 "(분열된) 미국인들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도 이날 사설에서 트럼프의 취임 연설은 과장이 심했고, 시시했다고 평가했다. 또 분노와 기성 정치에 대한 경멸로 끓어 올랐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제 세계는 이전 미국 대통령들과 다른 트럼프의 부적합한 단어들에 익숙해져야 한다며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지난 1933년 세계가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트럼프는 세계는 이제 두려워해야 한다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도 "트럼프는 미국을 외부와 내부에서 치명적인 위협에 처한 국가로 묘사하며 대선에서 승리했다"며 대통령에 취임 후에도 이를 핵심 아이디어를 이어갈 의사를 밝혔다고 분석했다.
vivid@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