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범' 경찰관 "상관 지시로 범행"…경찰청장 사퇴 요구 목소리
(하노이=연합뉴스) 김문성 특파원 = 작년 10월 필리핀에서 발생한 한국인 사업가 지모(53) 씨 납치·살해 사건에 현지 경찰 간부들이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필리핀 당국이 조사에 나섰다.
22일 주필리핀 한국대사관과 현지 언론에 따르면 필리핀 법무부와 경찰청은 마약단속국 소속 현직 경찰관 등이 주도한 이번 사건에 경찰 간부들의 연루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이 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된 경찰관은 지난 20일 체포영장 집행 직전 기자들에게 자신의 상관인 경찰청 마약단속팀장의 지시에 따라 저지른 일이라고 주장했다.
또 범행에 가담한 동료 경찰관 등이 자신을 주범으로 진술한 데 대해 경찰 고위 간부들을 보호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로널드 델라로사 경찰청장은 문제가 된 마약단속팀장의 보직을 해임하고 그의 관련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델라로사 경찰청장은 "이 마약단속팀장과 얘기를 나눴는데 무엇인가 숨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앞서 비탈리아노 아기레 법무장관은 지 씨 사건에 경찰청 고위 간부들이 연루됐을지 모른다며 법무부 소속 국가수사국(NBI)에 조사를 지시했다고 CNN 필리핀방송에 밝혔다.
아기레 법무장관은 이들 간부의 이름이나 구체적 의혹에 대해서는 언급을 거부했다.
몸값을 노리고 무고한 외국인을 납치·살해한 사건에 경찰 간부들까지 연루된 것으로 확인되면 필리핀 경찰에 대한 비난이 커지고 대대적 문책과 쇄신 요구가 일 것으로 보인다.
판탈레온 알바레스 하원의장은 델라로사 경찰청장이 경찰청 본부 안에서 경찰관이 살인을 저지른 이번 사건의 책임을 지고 사퇴할 것을 촉구했다.
델라로사 경찰청장은 "그만둘 준비가 돼 있다"며 "정부에 짐이 된다면 대통령에게 사직을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필리핀에서 인력송출업을 하는 지씨는 작년 10월 18일 중부 관광도시 앙헬레스의 자택 근처에서 마약 관련 혐의가 있다며 가짜 압수영장을 제시한 경찰관들에 의해 납치됐다.
이들 경찰관은 지 씨를 필리핀 경찰청사로 끌고 가 살해한 뒤 화장했다. 이들은 납치 당일 지 씨를 살해했지만, 지 씨 가족들에게 몸값으로 800만 페소(1억9천여만 원)를 요구해 이 중 500만 페소(1억2천여만 원)를 받았다.
필리핀 검찰은 이 사건의 용의자로 경찰관 2명, 렌터카업체 사장 등 3명과 신원이 특정되지 않은 공범 4명을 납치와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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