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행본·가로쓰기 개척…문인·출판인들이 기억하는 민음사 故박맹호 회장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정아란 기자 = 22일 별세한 박맹호 민음사 회장은 엄혹한 군사독재 시절 문인들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자신이 서울대 불문과 출신으로 소설가를 꿈꾼 문학청년이기도 했다. 출판인들은 일본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던 출판계를 혁신한 거목으로 꼽는다.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을 지낸 이시영 시인이 40여 년 전 긴급조치를 풍자한 시 '귀 이야기'를 동아일보에 실었을 때의 일이다. 소문으로는 안전기획부가 시를 지면에서 '들었다 놨다' 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시가 세상에 나왔다. "박맹호 선생을 술집 '가락지'에서 뵀어요. '정말 시원하다'면서 어깨를 쳐주셨습니다."
고인이 1972년 펴낸 '현대한국문학의 이론'은 한국 문단의 보폭을 넓힌 책으로 꼽힌다. 한국 문단에서 나온 첫 공동비평서로 문학평론가 김현·김주연·김치수·김병익이 썼다. 이들이 문학과지성사를 창간하기 전 활동공간이 민음사였다. 이 시인은 "문학출판과 문예부흥의 기틀을 쌓아갈 무렵"이라며 "민음사에서 문학과지성사 그룹이 갈라져 나왔다"고 말했다.
1976년 창간한 계간 세계의문학은 창작과비평·문학과사회와 함께 문단뿐 아니라 인문학계의 이론적 토양이 됐다. 당시 편집위원으로 참여한 유종호 문학평론가는 "유신시절 잡지 허가를 잘 내주지 않았는데도 박맹호 선생이 계간지를 내려는 욕구가 강했다. '세계의문학'이라는 제목 자체가 국내 문제는 안 다루겠다는, 잡지 허가를 받기 위한 전술"이라고 회고했다.
'오늘의 작가상'을 제정하고 수상작을 단행본으로 펴내는 시스템은 당시로서는 획기적 발상이었다. '부초'로 1977년 제1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한수산 작가는 "책이 안 팔리다보니 단행본 출간은 출판사가 베푸는 은혜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박맹호 선생은 문학작품을 베스트셀러로 올린다는 생각이 뚜렷했다"고 말했다. '부초'는 한 해 동안에만 80만 부가 팔렸다. 한 작가는 "종각역 근처에 민음사가 있던 시절 문이 열린 것 같아서 가보면 책상에 혼자 앉아 계셨다"며 "일요일에도 사무실에 나올 정도로 일 중독자였다"고 떠올렸다.
'부초'의 성공에는 작품성과 함께 한국 최초로 '북 디자인' 개념을 도입한 박 회장의 역할이 컸다. 박 회장이 신구문화사 편집자로 일하던 정병규 현 정디자이너 대표의 감각을 간파하고 영입해 맡긴 첫 작품이었다. "이전까지 소설책은 전부 붉은색 제목이었는데 부초는 군청색 바탕에 흰 글자를 썼다. 파격적 디자인인데도 안 된다는 말씀을 안하셨다"고 전했다.
가로쓰기와 단행본 출판 등 오늘날 당연해 보이는 출판문화의 상당 부분은 박 회장이 민음사에서 처음 시도했다. 민음사 편집장으로 일한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너무 많이 앞서가면 따라올 수 없고 제 자리에 있으면 뒤처지게 되니 늘 반 발짝만 앞서가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박맹호 선생을 통해 일본 출판의 영향을 벗어나 독자적인 출판문화를 만들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1960년대 출판사 '인문서점'을 함께 차린 고은 시인, 박 회장의 제안으로 베스트셀러 '평역 삼국지'를 일간지에 연재하고 책으로 낸 이문열 작가가 그의 평생 문우다. 고은 시인은 "청진동 옥탑방 시절 밤낮을 함께 보냈다. 늘 감각이 앞서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1979년부터 2주일에 한 번꼴로 박 회장을 만났다는 이문열 작가는 "문화적 균형이나 정신적 이해의 측면에서 이 만한 출판인을 다시 만나기 어렵다. 이런 표현을 잘 안쓰는데, 정말 거목같은 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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