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본 적도 개입한 적도 없다" 결백 주장…법정공방 가능성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하고 이 과정에 관여한 의혹을 산 김기춘(78)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51)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함께 구속됨에 따라 이들이 혐의를 인정할지가 주목된다.
특검은 블랙리스트의 작성·활용을 지시한 '몸통'에 관해 이들이 비교적 자세히 안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어느 한쪽이 입을 여는 순간 수사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은 블랙리스트 관여 혐의 자체를 일관되게 부인했다.
김 전 실장은 지난달 7일 최순실 게이트 진상조사 청문회에서 "뭐 블랙리스트니 뭐 좌파를 어떻게 해라 저는 그런 얘기한 일이 없다", "저희가 블랙리스트를 만든 일은 없다"고 전면 부인했다.
조 전 장관은 이달 9일 청문회에서 "예술인들의 지원을 배제하는 그런 명단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고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처음 인정했으나 리스트를 전혀 본 적이 없고 작성에도 관여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이 구속을 계기로 진술을 바꿀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정권의 상층부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던 이들이 갑작스러운 구금에 심경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2일 특검에 소환된 두 사람은 매우 수척한 모습으로 비쳤다.
일각에서는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은 상대방이 조사 과정에서 각기 어떤 진술을 했는지 상세히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라서 이른바 '죄수의 딜레마'와 비슷한 곤란을 겪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죄수의 딜레마'는 함께 죄를 저질렀다는 의심을 사는 두 명의 피의자를 따로 떼놓고 신문할 때 피의자가 겪는 고민 상황을 지칭하는 말이다.
피의자는 둘 다 끝까지 혐의를 부인하면 무죄 판결을 받거나 가벼운 형량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있지만, 상대방이 혐의를 인정했는데 혼자 혐의를 부인했다가 홀로 중형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만약 두 피의자가 모두 혐의를 인정하면 혼자 혐의를 부인했다가 상대방으로부터 배신당했을 때와 같은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지만 둘 다 혐의를 부인했을 때보다 무거운 처벌을 받는 문제에 봉착한다.
한국은 미국과 달리 혐의를 시인하거나 타인의 범죄를 진술하는 대신 자신과 관련된 혐의를 덜어주는 '플리바게닝' 제도를 도입하고 있지 않아 이런 상황이 노골적으로 벌어질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으로는 기소 및 재판과 관련해 수사기관의 관대한 처분을 기대하며 구속된 후 피의자가 수사에 협조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증거가 명백한데 공소사실을 시인하지 않으면 반성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고 이는 검찰(특검)이 중형을 구형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특검은 한쪽이 혐의를 인정하고 나머지 한쪽이 부인하는 경우 대질 조사로 강도 높게 추궁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이규철 특검보는 22일 브리핑에서 두 사람의 대질 조사에 관해 "거의 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만 혹시라도 수사 진행상 필요하면 원론적으로 가능하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혐의를 부인하고 결백을 주장한다면 유무죄 공방은 법정으로 이어지고 블랙리스트 작성·활용에 개입했는지는 재판부의 판단에 맡겨질 전망이다.
sewonle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