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정년퇴임 예정 "美 유학갈 때 민주화 비관…촛불, 민주주의 발전할 기회로 낙관"
"개헌은 신중히…'투명한 공개' 공화주의 개념, 개헌에 포함해야"
(서울=연합뉴스) 이효석 기자 = "촛불집회가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끌어낸 것은 한국 민주주의가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나라에 민주주의 체제 자체는 공고하게 자리를 잡은 겁니다. 이제는 그 '질'을논할 때입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비교정치학자인 임혁백(65)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내달 정년으로 퇴임한다. 그는 22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강단을 떠나는 소회와 함께 정치권과 사회에 아낌없는 쓴소리와 조언을 건넸다.
휴일인데도 연구실을 정리하러 학교에 들렀다는 임 교수는 "책 1천권을 버렸는데 아직 5천권 정도 남았다"며 서재를 뒤적였다. 그의 말마따나 연구실 사방에 정치학은 물론 각종 인문사회학 서적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정년을 목전에 두고도 강의·연구활동에 매진한 임 교수는 2015년 학자로서 최고 영예의 하나로 꼽히는 대한민국학술원상(사회과학부문)을 수상했다.
한국 근대 정치·사회사와 민주주의 발전 과정 분야의 석학으로 인정받는 그이지만, 유신정권의 압제가 극에 치닫던 1979년 '남미와 한국은 민주화가 어렵지 않을까'라는 비관속에 미국 시카고대학 유학길에 올랐다고 한다.
임 교수는 "(1979년) 10월에 개강하자마자 민주화 연구 거장인 필립 슈미트 교수의 강의를 듣는데, 남미에서 권위주의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면서 "몇 주 뒤 10·26이 일어났다"고 회상했다.
그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숨진 탓에 "1학기를 망쳤다"길래 이유를 묻자, 그는 "토론하느라"라고 짧게 답했다.
임 교수는 이 사건 이후 "민주주의가 올 줄 알았는데 전두환이 등장했다"면서, 그 사건을 자신이 중점적으로 민주주의를 연구하기 시작한 계기로 꼽았다.
이후 임 교수는 대표적인 민주주의 연구자로 손꼽히는 아담 쉐보르스키를 지도교수로 사사하면서 '민주주의로의 이행'과 '민주주의의 공고화' 과정을 깊이 연구했다.
임 교수는 "민주주의가 공고화된 나라가 권위주의로 돌아갈 확률은 거의 없다"면서 "공고화된 후에는 민주주의의 질(quality)이 문제인데, 우리나라는 그 질이 아직 떨어진다"고 진단했다.
그는 "선거는 계속하고 있지만, 자유 지수나 평등 지수는 낮다"면서 "가장 중요한 건 선출된 권력이 책임을 얼마나 지느냐인 책임성(accountability) 지수인데, 이것이 매우 낮아서 탄핵 사태가 불거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 교수는 이어 "촛불이 모인 광장에는 중고생과 노인, 대학생과 주부,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가 공존했다"면서 "산업화 시대처럼 동질성을 갖고 뭉친 대중(mass)이 시위하는 게 아니라, 각자 목적이 이질적인 다중(multitude)이 모인 것"이라고 분석했다.
탄핵을 매개로 100만명이 넘게 모였으나 광장에서 논의되는 의제는 교육제도 개편, 정치 개혁, 노동권 신장, 여성인권 보장, 환경문제 해결 등 셀 수 없이 다양하다는 뜻이다.
임 교수는 "'위기'는 '위험'(危)과 '기회'(機)가 합쳐진 단어"라면서 "나는 이번 촛불집회와 탄핵 사태를 한국 민주주의의 '질'을 높일 결정적 기회라고 낙관하고 있다"며 웃었다.
다만 그는 긍정적으로 변화할 기회가 온 만큼, 개헌과 같은 국가 전체의 개혁은 졸속이 되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교수는 "국정원·검찰 개혁은 입법만으로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문제"라면서 "헌법 제정에 버금가는 개헌은 통일됐을 때 통일헌법을 제정하면서 어차피 하게 된다"며 장기적인 시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이번 개헌에서는 민주주의뿐 아니라 공화주의에 관한 설명도 헌법에 추가할 필요가 있다"면서 "국가와 권력이 공화주의 정신에 따라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개헌해야 한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hy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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