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간 한국 작가의 세계 시장 진출 도와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세계 최대 예술품 경매회사인 크리스티가 2004년 10월 31일 홍콩에서 개최한 '아시아 동시대 미술' 경매에서 8점의 한국 작품이 낙찰됐다. 추정가의 4배에 팔린 작품도 있었다.
"잘 팔릴까 걱정도 했는데, 반응들이 좋아 놀랐어요. 흥미롭다, 신선하다고들 했죠. 국내 화랑가에서도 화제가 됐고요."
옛 기억을 더듬는 배혜경(60) 크리스티코리아 전 대표의 눈이 반짝였다.
배 전 대표가 당시 홍콩 크리스티의 아시아 현대 미술 총책임자인 에릭 창과 의기투합했던 이 경매는 한국 작가들이 세계 시장에 진출하는 시발점이 됐다. 이후 배 대표가 크리스티를 통해 지금껏 소개한 한국 작가 수는 150명을 훨씬 웃돈다.
2000년부터 16년간 크리스티코리아를 이끌다 최근 물러난 배 전 대표를 최근 서울 종로구 팔판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배 전 대표가 크리스티와 인연을 맺을 때만 해도 세계 시장에서 한국 미술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1998년 런던 크리스티의 '아시아 아방가르드' 경매에서 한국 작품은 하나도 팔리지 못했다.
"크리스티를 통해 한국 작가들을 국제무대에 진출시키고 싶다"고 입사 포부를 밝힌 배 대표에게 영국의 상사가 "크리스티는 자선 단체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은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이후 중국의 급속한 경제발전에 힘입어 중국 미술의 시장 가치가 상승한 것은 한국 미술에도 기회로 작용했다.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 아시아 현대 미술을 위한 별도 카테고리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2004년 첫 경매를 앞두고 에릭 창과 함께 국내 화랑가를 훑은 배 전 대표는 참신하고 가격 면에서도 매력적인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을 내세우는 것으로 전략을 짰다. 결과는 100% 낙찰이었다.
이렇게 기틀을 다지기 시작해 10여년이 지난 지금 세계 미술 경매시장에서는 단색화를 중심으로 한 한국 추상미술의 인기가 상당하다.
배 전 대표는 "세계적으로 원로 작가들 쪽으로 흐름이 바뀌고 단색화도 그런 경향에 맞아떨어진 것 같다"며 한국 갤러리와 미술관 등의 꾸준한 노력도 오늘날 단색화 인기에 한몫했다고 분석했다.
"미술 흐름은 혼자 만드는 게 아니에요. 많은 갤러리와 국립현대미술관이 단색화 전시를 열고, 또 유명 외국 컬렉터들에게 단색화를 미리들 팔고, 이렇게 엄청나게 노력한 결과죠. 시장적인 측면뿐 아니라 책자 발간 등 아카데믹한 노력도 병행돼야 해요."
배 전 대표는 다만 "시장이 유지되려면 수요와 공급의 긴장감이란 게 있어야 한다"면서 "원하는 사람이 있을 때 시장에 좋은 작품이 제때 나와줘야 하는데 작년과 재작년에 너무 단색화 작품이 쏟아진 것 같다"고 우려했다.
"한국 미술 시장은 정말 작은데 그 안에서 갤러리, 컬렉터, 경매회사가 다 따로 움직이거든요. 단기적인 이익보다는 큰 흐름을 생각하면서 같이 단합해 '윈윈'하는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어요. 단색화도 세계 시장에 천천히 안착할 수 있도록 수급을 좀 조절한다든가 하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죠."
그는 마지막으로 미술 애호가의 저변 확대를 강조했다.
"그림이라는 건 10년, 20년씩 향유하다가 가격이 오르면 팔기도 하는 것인데 요즘 투기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러다 보니 시장이 요동을 치고요. 미술 애호가의 저변 확대도 중요합니다. 직장인들도 월급의 일정 부분을 모아 몇십만 원. 몇백만 원짜리 작품을 살 수 있는 문화가 조성됐으면 해요."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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