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어린이 위한 시에도 시대와 민족의 아픔 담았다

입력 2017-01-23 11:05  

윤동주, 어린이 위한 시에도 시대와 민족의 아픔 담았다

이승하 교수 "밝은 꿈 그리기엔 암담한 상황에 슬픈 동시 써"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으로 꼽히는 윤동주(1917∼1945)는 어린이를 위한 시도 썼다. 시인의 작품으로 알려진 125편 가운데 30편가량이 동시다. 동시를 집중적으로 써내려간 1936∼1938년, 갓 스무 살을 넘긴 시인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승하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는 시대의 아픔을 보듬고 증언하려는 윤동주의 시심이 동시에도 그대로 실현됐다고 말한다. 그는 23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회'에서 시인의 동시를 집중적으로 살핀다.

윤동주의 동시에는 해맑고 순진무구한 어린이가 드물다. 세상 풍파에 갖은 고난을 겪는다는 점에서 시적 자아는 차라리 어른 쪽에 가깝다. 윤동주 동시의 큰 주제는 이향(離鄕)과 빈곤이라고 이 교수는 분석한다.

"빨랫줄에 걸어논/ 요에다 그린 지도/ 지난밤에 내 동생/ 오줌 싸 그린 지도// 꿈에 가 본 엄마 계신/ 별나라 지돈가?/ 돈 벌러 간 아빠 계신/ 만주땅 지돈가?" ('오줌싸개 지도' 전문)

엄마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아빠는 멀리 떨어져 있다. 형제는 사실상 고아나 마찬가지다. 이 교수는 "고향을 등진 독립운동가나 국경을 넘어 돈 벌러 간 이들이 많았다"며 "당시 많은 어린이들이 겪고 있는 불행한 현실상황이 그대로 작품의 소재와 주제가 되는 것이 윤동주 동시의 한 특징"이라고 말한다.


"붉은 사과 한 개를/ 아버지 어머니/ 누나, 나, 넷이서/ 껍질째로 송치까지/ 다― 나눠먹었소."

동시 '사과'에는 당시의 절대빈곤이 상징적으로 그려진다. 사과 한 개를 네 식구가 나눠 속 고갱이까지 남김없이 먹었다는 게 내용의 전부다. '해바라기 얼굴'에선 아침 일찍 일터에 나갔다가 지쳐 돌아오는 누나의 얼굴을 해바라기에 빗댄다.

"누나의 얼굴은 해바라기 얼굴/ 해가 금방 뜨자/ 일터에 간다.// 해바라기 얼굴은/ 누나의 얼굴/ 얼굴이 숙어들어/ 집으로 온다."

이 교수는 "비록 동시이기는 하지만 카프(KARF·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 시대의 어떤 작품에 못지않은 현실비판 의식을 지니고 있다"며 "아이들의 밝은 꿈을 그리기에는 상황이 너무나 암담했기에 이런 슬픈 동시를 썼던 것"이라고 추측한다.

평범한 일상에서 가져온 소재를 아이다운 엉뚱한 생각에 담은 전형적 동시도 있지만 많지는 않다. 이 교수는 "동시만 보더라도 윤동주는 현실을 몰각하거나 방관하는 자세를 취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동시대인들의 아픔을 보듬고 증언하려는 역사의식과 민족정신의 편린이 내보이는 시를 썼다고 판단된다. 그것도 동시를 통해서 실현했기에 더더욱 큰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 류양선 가톨릭대 명예교수는 "윤동주가 어둠의 시대를 견뎌낸 힘의 원천은 그의 신앙에 바탕을 둔 종말론적 희망에 있다"고 주장한다. 송희복 진주교대 교수는 학계의 윤동주 연구성과를 되짚고 작가·작품·독자의 관점에서 각각 바라보는 '총체적 관점'을 앞으로 과제로 제시한다.

dad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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