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강제이주 80년 기념展 여는 고려인 문 빅토르

입력 2017-01-23 14:59  

[사람들]강제이주 80년 기념展 여는 고려인 문 빅토르

"그림 81점에 과거 슬픈 기억 대신 잘사는 모습 담았죠"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올해는 고려인이 중앙아시아에 정착한 지 80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과거 슬픈 기억들보다는 고려인이 잘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카자흐스탄의 대표적인 고려인 화가 문 빅토르(70)는 고려인 강제이주의 역사를 희망의 모습으로 바라본다. 그는 중앙아시아에 정착한 고려인이 더는 슬픈 민족으로 비치는 것을 결단코 거부한다.

스탈린은 1937년 8월 21일 일본의 간첩활동을 미연에 방지한다며 연해주에 거주하던 고려인 17만2천여 명을 '불모의 땅'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했다. 한 달 넘게 열악한 환경에서 시베리아 횡단 화물열차를 타고 가던 고려인 가운데 500여 명이 숨졌고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지에 도착해 정착하는 과정에서도 사상자가 속출했다.

그러나 알마티의 카스체예바 국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고려인 강제이주 80년 전시회의 분위기는 그리 어둡지가 않다. 절망 대신 희망을 보고자 하는 문 화백의 화풍 덕분일 것이다.

문 화백은 23일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1세대들은 고려인 특유의 민족성으로 어려운 환경을 꿋꿋하게 버텨내고 잘 적응해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그 모습을 추상적으로 그렸다"며 말문을 열었다.

현지시간으로 지난 18일 개막해 2월7일까지 이어지는 '내 팔레트의 수원- 바스토베' 전(展)에서는 문 화백이 듣고 겪어온 고려인의 역사를 그만의 방식으로 형상화한 81점의 유화 작품을 선보인다. 바스토베는 1937년 10월 9일부터 1938년 4월 10일까지 강제이주 고려인들이 토굴을 파고 살았던 초기 정착촌이다.

"중앙아시아 정주 8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3년 전부터 그림을 그렸어요. 여러 작품 중에서도 '가계'라는 작품이 가장 애착이 갑니다. 광주광역시 인근에서 살다가 150년 전 연해주로 이주했고, 다시 중앙아시아에 강제이주한 저의 집안 가계도에 무척 관심이 많기 때문이죠. 앞으로도 그림을 통해 우리의 뿌리를 찾는 작업을 계속할 것입니다."

문 화백은 고려인 최초 정착지인 우슈토베의 바스토베 구역(옛 '레닌기치')에서 나고 자란 고려인 3세다.

10살 때 엽서를 보고 그곳에 새겨진 지휘관의 얼굴을 오려와 부엌칼로 조각할 정도로 천재성을 인정받은 그는 어머니 박시나 여사의 가르침으로 사람을 슬프게 하거나 절망적인 상황 대신 꿈과 희망, 사랑과 행복을 캔버스에 표현했다. 강제이주의 슬픈 이야기조차 희망의 메시지로 화폭에 담은 이유다.

그는 고려인의 정신과 기억의 감정을 20세기 초 피카소와 세잔 같은 작가들이 시작한 큐비즘 기법으로 구현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물은 가슴 저린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어요. 저 자신이고, 그리운 어머니이고, 지난날 강제이주의 아픔을 간직한 고려인들의 모습입니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고려인 문화예술가, 작가, 화가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도 알리고 싶었다는 그는 "카자흐스탄 최고의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여는 것 자체가 고려인으로서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강조했다.

한국말이 유창한 그는 "조상이 한국에 뿌리를 두고 있고, 족보도 광주광역시에 있기에 모국어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해 거의 독학으로 공부했다"며 "고려인들이 한국어를 잘 했으면 좋겠는데 그러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전승민 주알마티 총영사, 오가이 세르게이 카자흐스탄 고려인협회 부회장, 박이반 전 수학연구소장 그리고 고려인, 현지 화가, 예술인 등 150여 명이 참석한 전시회 개막식에서는 문 화백에게 카자흐스탄학술원 회원증이 수여됐다.

그는 지난 2014년 11월 26일부터 12월 2일까지 러시아 한인이주 150주년을 맞아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가나아트센터에서 '1937년 강제이주 열차', '붉은 안개' 등 30점의 작품을 전시했다.

ghwa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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