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출석해 24분간 격정 토로…"시킨 사람은 처벌, 실무자는 면책돼야"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이보배 기자 =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처음으로 폭로했던 유진룡(61)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3일 참고인 신분으로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출석해서도 작심 발언을 이어갔다.
유 전 장관은 "이번 김기춘씨의 구속을 계기로 우리나라가 다시 정의롭고 자유로운 사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 "굉장히 혼란스러운 상황이 초래된 것에 대해서 어떻든 이 정부에서 책임을 지고 있었던 사람으로서 굉장히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국민한테 이 기회에 다시 한 번 정말 면목이 없고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라고 밝혔다.
다음은 유 전 장관과의 일문일답.
-- 블랙리스트에 대해서 말해달라.
▲ 김기춘씨로 주도되는 이 정권이 자기네들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철저하게 차별하고 배제하기 위해서 모든 공권력을 다 동원한 것이다. 우리 사회가 가진 민주적인 어떤 기본질서와 가치를 절대로 훼손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블랙리스트 작성 관리에 김기춘 실장의 윗선, 박근혜 대통령 개입 정황 있나
▲ 특검에서 수사 중이니 오늘 올라가서 다시 상의해봐야 할 것 같다. 다만 김기춘씨가 구속되게 된 배경에는 우선 김씨 관련된 많은 증거자료를 문체부에서 가지고 있었고 제출됐다는 것. 둘째로 고 김영한 민정수석 업무 수첩에 나온 것처럼 그 내용이 진실이란 것을 뒷받침해줄 자료를 많은 사람이 제출했다는 것. 특검에서 조사받은 많은 전 청와대 수석들이 회의에서 어떤 지시가 있었다, 지시받는 것을 봤다고 증언·실토했으니 구속되는데 상당히 많은 증거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
-- 문체부 직원 찍어내기 한 것에 대해서도 박 대통령 관련돼 있다는 정황 있나?
▲ 가령 노태강 국장은 분명 박 대통령이 지시했다고 헌재에서 증언이 있었다. 그다음에 1급 세 분. 그분들을 찍어낸 건 지금 박 대통령까진 모르겠다. 김기춘 실장은 지시한 장본인이라고 알고 있다.
-- 조윤선 장관이 회유했다는 의혹이 있었다.
▲ 사실이 아니다. 굳이 얘기하면 거꾸로다. 제가 조윤선 장관한테 블랙리스트 관련해서 제가 해외 가족여행을 가기 전에 관련해서 '정말 솔직하게 좀 해줬으면 좋겠다.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사람들 인사 정리를 과감하게 좀 해줬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저희 출신인 신현택 전 차관께 부탁을 했고 이 양반이 조윤선 장관께 부탁한 게 조윤선 장관의 압수된 스마트폰에 문자가 남아 있어 특검에서 오해가 있었던 것이다.
-- 김기춘 실장이 지시할 때 대통령 관심 사안이라고 확실히 언급하던가?
▲ 그런 적 없던 거로 기억한다.
-- 박근혜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서면이나 대면 보고받은 정황 있나
▲ 그거는 답하기 저로선 곤란하다. 저는 블랙리스트 명단 이전에 차별 배제행위가 계속 이뤄지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에게 저한테 약속한 것처럼 '이렇게 하시면 안 된다' 이런 말씀을 드린 적이 2014년 1월 29일 있었다. 세월호 참사 일어난 다음에 다시 이런 일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2014년 7월 9일인가 뵙고 문제 지적하면서 '이렇게 하면 정말 큰일 난다, 그렇게 하시지 않아야 한다' 말씀드렸고 거기에 대해 묵묵부답 반응이었다.
-- 김종 차관이 김 실장에게 직보하는 건 알고 있었나
▲ 건건이는 몰랐고 정황은 짐작하고 있었다. 김 실장과 제가 블랙리스트 등등으로 사이가 안 좋아서 계속 부딪혔다. 제가 모르거나 제가 암튼 다른 생각을 가졌는데도 김 차관이 이상한 행동을 할 때마다 이런 배경이 있겠구나 생각은 했다.
-- 정관주 전 차관 구속됐다. 차관 수난사란 얘기까지 나오면서 차관들이 계속 바뀌었다.
▲ 정관주 차관은 국민소통비서관일 때 행위 때문에 구속된 것이다. 블랙리스트 행위를 하는데 국민소통을 잘하려고 그걸 했다는 게 좀 아이러니하다. 아마 억측하자면 문체부가 하도 말을 안 들으니 말 좀 잘 듣게 하려고 차관들을 아마 감독관으로 보냈고, 그 감독관의 행위 때문에 지금 구속된 거로 생각한다.
-- 블랙리스트 폭로하게 된 계기는
▲ 블랙리스트가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부정부패를 얘기하는데 부정부패는 어느 정권이든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거다. 없어야겠지만. 블랙리스트는 헌법 가치를 조직적으로 훼손한 범죄행위기 때문에 반드시 없어져야 하는 문제다. 유신 이후에 전두환 시대까지 블랙리스트 명단 관리가 있었다가 민주화되며 없어졌는데 부활했다. 대한민국 역사 30년 돌려놨다. 앞으로 또 이런 일 벌어지면 대한민국 역사는 후퇴할 수밖에 없다. 관련자 처벌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
-- 조 전 장관 직무대행을 맡은 송수근 차관도 연루돼 조사 받았다.
▲ 제가 알고 듣기로는 블랙리스트와 형식적으로 관련이 없는 문체부 간부는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블랙리스트를 관리하기 위한 위원회라고 만들어놓고 위원으로 실·국장들이 모두 포함돼 있어서 관련이 없는 사람은 없지만. 송수근 차관은 형식적으로는 관련돼 있었어도 실질적으로는 블랙리스트 관리하고는 관련 책임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송 차관을 중심으로 문체부가 빨리 안정을 되찾고 제 할 일을 하도록 송 차관에 대한 의문 이런 건 거둬주시고 신뢰하고 힘을 실어주시면 좋겠다고 부탁드린다.
-- 문체부 직원들이 많이 연루됐다.
▲ 현직에서 고생을 많이 했다. 담당하던 직원들이 저를 만나 울면서 양심에 어긋나는 짓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서 호소한 적이 굉장히 많았다. 그래서 제가 건강 해치니까 빨리 다른 자리로 옮겨라 했더니 "자기가 피하더라도 누군가는 이 일을 할 수밖에 없다. 내가 양심에 어긋나서 하기 싫은 일을 다른 누구한테 맡기겠느냐"라며 울더라. 그런데 억지로 시킨 사람들은 그동안 "생각하지 마라, 판단은 내가 할 테니까 너희는 시키는 대로만 하라"라고 공공연하게 대놓고 했다. 공무원을 모욕하고 핍박하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는 다들 '나는 모른다'고 한다. 모든 책임을 실무자들이 져야 한다면 너무나 가혹한 일이다. 어쩔 수 없이 강요로 양심에 어긋나는 짓을 하게 된 문체부의 특히 과장 이하 실무자들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면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마지막 하고 싶은 말
▲ 블랙리스트 중심으로 매우 많은 거의 모든 정부 권력기관이 이 사람들의 사익에 동원됐다. 이런 제도를 차제에 개선하지 않으면 다음 정부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국민이 지혜를 모아 더는 공무원이 소신과 양심을 어겨 가며 영혼 없는 공무원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공무원의 정치 중립을 지키도록 제도 개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bob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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