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제주 인물 대사전' 펴낸 향토사학자 김찬흡씨

입력 2017-01-25 07:43  

[사람들] '제주 인물 대사전' 펴낸 향토사학자 김찬흡씨

제주 유명 인물 3천여명 수록…"후대에 자긍심 심어주고 싶어"

(제주=연합뉴스) 전지혜 기자 =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로'라는 말을 듣고 제주에도 유명한 인물이 많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제주 인명 대사전을 만들게 됐습니다."





탐라 시대부터 현대까지 제주와 관련된 인물 3천여명의 정보를 수록한 '제주 인물 대사전'을 최근 발간한 향토사학자 김찬흡(83)씨는 25일 연합뉴스 기자가 책을 만들게 된 계기를 묻자 학창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그가 제주 향토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조국 광복을 맞은 초등학교 5학년때다. 당시 아버지가 갖고 있던 '제주도실기'(김두봉 저)와 구한말 역사교과서로 쓰인 '동국역사'를 탐독하며 내 고장과 우리나라 사랑에 눈을 떴다.

당시 만난 은사도 그에게 큰 영향을 줬다. 창씨개명(일본식 성명 강요)이 이뤄지던 일제 강점기였음에도 학생들에게 자신의 한글 이름을 알려주고, 다 함께 아리랑을 부르자고 하는 등 민족과 조국이 있다는 것을 깨우쳐줬다.

이후 6년제 농업학교에 다니던 한국전쟁 시기 다른 지역에서 제주로 온 교사 중 한 명이 수업시간에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도로'라는 말을 하는 걸 듣고 느꼈던 분개심이 제주 인물사전 발간의 계기가 됐다고 그는 회고했다.

김씨는 20대 대학생 시절부터 수십년 간 제주섬 구석구석을 누비며 제주의 역사, 지리, 민속, 교육, 관광, 인물 등 향토문화 자료를 찾아다녔다.

교사 생활을 하다 장학사가 된 이후 잦아진 서울 출장 때마다 짬이 나면 국회도서관과 국립도서관에 들러 자료를 얻었다. 장남이 국회의원 보좌관을 하는 동안에는 국회도서관의 제주 자료를 얻는 데 도움을 많이 받기도 했다.

그는 북제주교육청 교육장, 제주도 교육연구원장, 제주도교육위원, 북제주문화원 초대 원장, 제주도 문화재위원, 독립기념관 자료수집위원, 제주도유형문화재 제1분과위원장, 제주도교육의정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정년퇴임한 이후에는 고장의 향토문화를 바르게 널리 알리겠다는 의지 하나로 그동안 부지런히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20세기 제주인명사전(2000년), 제주사인명사전(2002년), 제주항일인사실기(2005년), 제주애월읍명감(2011년) 등의 저서를 내놨다.

그간 저서를 바탕으로 수집한 자료를 총망라해 2014년 제주향토문화사전을 발간한 데 이어 최근 자매편인 제주인물대사전을 내놓았다.

사전에는 탐라 시대부터 현대까지 제주 출신으로 역사적 발자취를 남긴 인사는 물론 제주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 제주에 대한 작품을 남긴 인물, 유배인, 제주와 관계가 깊은 사람 등이 담겼다.

다른 인물사전과는 달리 저명인사 뿐만 아니라 특별한 삶을 살았던 서민이나 과거 인명사전에서 소외됐던 의사자, 여인들도 기록했다.

전설 속 인물인 '설문대할망'이나 작품의 등장인물인 '배비장' 등 제주 신화·전설의 주인공들도 이름을 올렸다.

게다가 해당 인물의 사진이나 작품, 유묵 등도 함께 싣기 위해 자료수집 기간이 족히 2∼3년은 더 걸렸다고 한다.

김씨는 "우리 마을에서 하인으로 일하던 고씨 노인도 사전에 실었다. 그가 마을에서 존경받을 정도로 일을 잘 한데다가 자식 교육에도 힘써서 아들이 초등학교 교사에 교육장까지 됐다"며 "후대에 알려졌으면 하는 기층민중의 삶을 담기 위해 애썼다"고 말했다.







이미 책은 발간됐지만 그는 자료수집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최근에도 신문을 읽다가 출신지나 근무지 등이 제주도인 인물을 발견하면 바로 스크랩해 밑줄을 긋고, 기사 내용을 요약해 공책에 옮겨 적는다.

이렇게 추가로 모인 인물이 1천명이 넘으면 증보판도 낼 계획이다.

그는 "이런 일을 할 사람이 나 말고는 없지 않겠나. 자료 수집하고 정리하고 이런 작업을 하다 보니 병 없이 건강한 것 같다"며 미소 지은 그는 "이런 향토 인물사전이 나온 지역이 없을 것"이라며 자부심을 나타냈다.

이어 "제주는 말이나 키우는 곳이 아니라 이렇게 인물이 많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어서 한평생을 바쳐 이런 작품을 만들어 냈다"며 "이번 책이 후손들에게 제주인으로서 자긍심을 심어주고 각종 연구 등에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atoz@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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