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연희 연구교수 "사임당 초충도 중 확실한 진품 없어"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정유년 설을 앞두고 500년 전 인물인 신사임당(1504∼1551)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출판계에서는 지난해 연말부터 사임당을 다룬 평전과 학술서, 소설을 잇달아 펴냈고, 서울미술관은 지난 23일 신사임당이 그렸다는 수묵화 '묵란도'를 공개했다. 오는 26일에는 화제의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가 처음으로 방영된다.
신사임당은 흔히 율곡 이이를 길러낸 현모양처이자 뛰어난 여류 예술가로 인식된다. 그런데 우리는 신사임당의 예술 작품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고연희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연구교수는 최근 간행된 책 '신사임당, 그녀를 위한 변명'에서 "신사임당이 화가로서의 전문적 능력을 확보하고 시대를 앞서간 여성이었음은 분명하다"고 인정한다.
사임당의 예술가로서의 면모는 이이가 어머니 신사임당의 행적을 기록한 '선비행장'(先批行狀)에 나와 있다. 이이는 이 글에 "평소에 묵적이 뛰어났는데 7세 때 안견의 그림을 모방해 산수도를 그린 것이 아주 절묘했다. 또 포도를 그렸는데 세상에 흉내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썼다.
이이는 어머니의 산수화와 포도도를 매우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사임당의 산수화와 포도도 진품은 남아 있지 않고, 그녀가 그렸다고 전하는 그림인 '전칭작'(傳稱作)만 있다.
이상한 점은 '선비행장'에 사임당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초충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초충도는 풀과 벌레를 소재로 한 그림으로, 사임당이 그렸다는 초충도는 오늘날 많이 전한다.
이에 대해 고 연구교수는 신사임당의 화가로서 평가가 산수화와 포도도를 남긴 인물에서 초충도의 대가로 변한 시점을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사망한 직후인 18세기 전반으로 추정한다.
이와 관련해 고 연구교수가 특히 주목한 그림은 서울미술관이 선보인 '묵란도'다. 그는 "이 그림이 난(蘭)이 아니라 '원추리와 나비'를 묘사한 것"이라면서 상단부에 있는 송시열의 글을 읽어보면 그림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는 한 줄도 없고, 율곡 어머니로서의 인품만 부각돼 있다고 지적한다.
이어 "송시열이 당시 사임당의 산수화를 위작으로 선포하고 초충도는 칭송하면서 18세기 노론계 학자들을 중심으로 사임당의 초충도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졌다"며 "우암은 신사임당을 풀과 벌레 같은 미물도 사랑하는 인자한 어머니로 규정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18세기 선비들이 신사임당의 그림에 대해 쓴 글을 찾아보면 초충도 이야기 일색이다. 이처럼 신사임당 초충도에 대한 관심이 쏠리면서 복제한 그림과 가짜 그림이 나돌기도 했다.
고 연구교수는 현재 전하는 사임당의 초충도에 대해서도 "모두 한 사람의 필적이 아니며 사임당의 친필도 결코 아니다"며 "결론적으로 사임당의 진작이 아닌 18세기에 모사한 그림"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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