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 "제일 침착할 때가 출격입니다. 조종복을 입고 조종석에 앉으면 그때부터는 무념무상입니다. 오직 자기가 할 일은 그것뿐입니다."
살아있는 6·25전쟁 영웅 김두만(91) 장군이 전쟁 당시 F-51D 전투기 100회 출격을 달성하고 남긴 말이다.
대한민국 공군의 전설인 김두만 장군의 평전 '항공 징비록' 출판기념회가 25일 서울 대방동 공군회관에서 개최됐다.
이 평전은 평생을 공군과 함께 한 김 장군의 삶을 객관적으로 기록해 개인의 삶을 넘어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와 공군사를 풍부한 자료와 함께 입체적으로 담아낸 통사로 평가된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김 장군은 개인 홍보를 원하지 않아 평소 자서전을 남길 생각이 없었지만, 공군역사기록관리단의 끈질긴 설득으로 책이 나왔다고 한다.
공군 후배들까지 찾아가 항공인 1세대의 활약상과 투혼을 후세에 남겨달라고 설득에 가세하자 김 장군은 개인 치적 홍보가 아닌 우리 공군의 역사에 중점을 두고 객관적으로 집필한다는 조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14개월에 걸쳐 2주에 한 번씩 이뤄진 인터뷰는 한 번에 4~5시간 동안 진행됐다.
공군 역사자문위원인 김덕수 공주대 교수는 김 장군의 증언과 함께 '공군사', '항공전사', '6·25 참전조종사 증언록' 등을 비교해 정리했고, 집필 후 역사학계 전문가와 공군역사기록관리단의 철저한 검증을 거쳐 책의 완성도를 높였다.
공군은 "항공 징비록은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공군이 갖는 의미를 재조명하고 조국 영공 수호에 헌신한 1세대 항공인들의 투혼을 상기해 공군 역사에 새 생명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김 장군은 "이 책은 제 개인 문집이 아니라 저와 함께 창공을 누비며 조국 영공 수호에 목숨을 걸었던 제1세대 항공인들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한다"며 "장병, 청소년, 국민들에게 널리 읽혀 항공인들이 피땀으로 일궈낸 대한민국과 공군을 정확히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정경두 공군참모총장은 축사에서 "항공 징비록은 우리 근현대사와 함께한 공군의 역사를 철저한 검증을 거쳐 가장 객관적으로 집대성한 귀중한 역사 기록"이라고 말했다.
김두만 장군은 공군 창설부터 역사를 함께 했다. 6·25전쟁 발발 당시 우리 공군에 단 한 대의 전투기도 없는 열악한 상황에서 T-6 훈련기로 출격해 적진에 맨손으로 폭탄을 투하하며 북한군과 맞섰다.
미군으로부터 전투기를 인수받은 이후 1950년 10월 2일, F-51D 전투기로 처음 출격한 이래 본격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1950년 10월 여의도기지 작전에 참가해 개전 초기 우리 군의 서울 탈환과 평양 입성에 기여했으며 1951년 8월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 1951년 10월 대한민국 공군 단독 출격작전, 1952년 1월 승호리 철교 차단작전 등에 참가해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1952년 1월 11일, 대한민국 최초로 100회 출격 기록을 세웠으며, 전쟁 중 F-51D 전투기로 총 102회 출격해 전쟁승리에 기여했다.
김 장군은 "풍전등화에 놓여있는 대한민국을 지켜내기 위해 적의 대공포화망을 뚫으며 목숨 걸고 공격했다"며 "오직 조국 수호라는 목표 하나로 사력을 다해 적과 싸웠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휴전 후에도 그는 제10전투비행단장, 공군작전사령관 등을 역임하면서 공군의 현대화에 매진했다. 제11대 공군참모총장 재임 때는 제5공수비행전대와 제36전술항공통제전대를 창설했고, 학생군사훈련단과 공군기술고등학교를 각각 설치해 공군의 미래 인재 양성에 앞장섰다.
이러한 공로로 을지무공훈장(1951년), 은성충무 무공훈장(1953년), 무성충무 무공훈장(1954년),미국 공로훈장(1964년), 2등 근무공로훈장(1969년) 등 다수의 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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